죽은 사람의 사진
잠시 대구에 돌아왔을 때 지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 엄마 사진 인화해서 집에 놔둘라고….''
''죽은 사람 사진 집에 많이 놔두지 말라고 하잖아. 사진에 붙어 있다고. 그래서 우리집은 다 치웠는데.''
''오…. 그런 얘기 처음 들었어! 근데 나는 엄마가 와줬으면 좋겠는데….''
''뭐 그냥 미신이긴 한데 믿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보다 먼저 가족 장례를 치러본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가끔 해주기도 했다. 그것이 생각나 49재를 지내러 온 언니에게 그 얘기를 전하자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갈 데 많아서 좋지, 뭐.''
갈 데가 많다고…? 그 '갈 데'라는 선택지에서 내 자리가 있긴 한 건지…?
언니집과 여동생집은 그렇게 열심히 드나들던 엄마가 이상하게도 위치적으로 가장 가깝고 오기 쉬운 나의 집에는 단 한 번도 자의로 와본 일이 없었다. 남동생이 따로 살 때에도 틈만 나면 나에게 운전을 해서 가자고 했었지만 내가 따로 살고 나서는 한 번만 오라고 그렇게 말해도 정말 단 한 번을 와주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에 엄마가 왔던 날을 잘 기억해 보면, 내가 엄마집에 갔다가 다시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엄마는 나를 붙잡아둘 생각으로 '필요한 걸 챙기러 같이 가주지.'정도의 흐름을 탔던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어디 가는 김에 잠깐 들르자.' 정도가 다였다. 그렇게 억지로 나의 보금자리에 들어서도 엄마는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채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 내 공간에 엄마 사진을 둔다고 한들, 엄마는 나를 보러 와줄까?
그날도 엄마가 너무 심심하다고 해서 엄마집에 들르러 갔던 날이었다. 나는 왜 엄마가 늘 나의 공간에 와주지 않는지에 대해 조금은 심술이 나있었고, 그날은 마침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수목원에 가자는 말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집에 있으면 밥도 잘 먹지 않는 엄마가 먹을만한 것을 찾다가 그 당시 내가 살던 곳 근처에 한식대첩 우승자가 있다는 것을 핑계로 집 근처까지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곳에서 수목원까지는 또 운전으로 한 시간을 가야 했지만 내가 이런 동네에 살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한번 오는 게 어렵지 두 번은 쉽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도 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엄마, 여기가 한식대첩 우승자 집 이래. 생각보다 비싸지도 않드라.''
외식을 하자고 하면 비싼지부터 확인하는 엄마에게 선수를 쳤다. TV 없이는 못 사는 엄마에게 TV 프로그램을 들먹이면, 없는 입맛에라도 조금은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쯤 엄마도 백종원이 웃기다며 매일같이 그의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으니 먹힐 것이라 장담했다.
''나는 이런데 안 와봐서 잘 모르니까 알아서 시키라.''
''엄마는 고기 잘 안 먹으니까 생선이랑 고기 같이 있는 걸로 시켜서 먹자. 고기도 쫌 먹어봐라고.''
사실 나도 외식은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엄마를 모시고 오기 직전 벼락치기로 확인한 탓에, 정작 가게에 들어서면서부터 구체적으로 이 가게가 어떤 곳인지, 반찬은 어떤 게 얼마나 나오는지, 엄마의 마음에 쏙 들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몰아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주문해야지.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주문은 빨리 진행되었고 바로 차려지는 반찬이 꽤 다양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고기가 없으면 밥을 안 먹는 흉폭한 육식주의자였기에 온갖 채소와 나물 반찬에 손댈 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식사는 나를 위한 게 아니니까, 나는 그저 엄마 입에 음식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비교적 평소보다 많은 식사를 하신 것 같았지만, 평생 자기 손으로 식구들 밥을 해먹이던 사람이 남이 해준 음식에 쉽게 만족할 리가 없었다. 엄마는 외식을 할 때마다 자식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악플러였다. 그런 엄마가 어떤 가게의 음식이 맛있었다고 한마디만 하면 우리들은 그때부터 그 가게만 끊임없이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방송에 나온 것 치고는 별 맛이 없다고 하셨고 엄마가 드시고 남은 1.2인분 정도의 음식은 나의 몫이었다.
그래도 일단 밥을 먹였다는 안도감으로 엄마를 차에 태워 수목원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니 잠깐 눈을 붙여도 된다고 했지만 엄마는 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길가에 보이는 많은 것들에 대해 쉴 새 없이 얘기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엄마는 길가의 나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고 나는 잘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재미가 있었다. 2019년 11월의 엄마와 함께 구경하는 가을은 참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 혼자는 절대 가지 않았을 수목원의 국화축제, 특히 나에게 국화가 특별했던 것은, 빌라로 이사하기 직전까지 엄마가 마당에서 키웠던 국화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열개도 넘는 크고 작은 화분에 크기도 색깔도 다른 국화가 잔뜩 있었고, 그 옆에는 모양이 조금 다른 수국도 피어있었다. 그때처럼 다시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화분을 가꾸며 행복해하는 엄마에게 가장 좋은 구경은 역시 꽃구경이었다. 하지만 국화축제는 우리만 꽃구경을 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주차장 한 칸을 차지하기 위해 오랜 대기 시간을 거쳐야 했고, 주차를 한 뒤에는 남아있는 기력을 다 써버린 사람처럼 비틀비틀 걸었다.
''엄마, 저기 솜사탕 파는데 먹을래?''
''단거는 니나 좋아하지, 먹고 싶으면 한 개 사봐라.''
어릴 적 솜사탕을 먹고 싶다고 하면 비싸고 양도 적다며 사주지 않았었는데, 엄마는 수목원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차피 돈은 내가 쓰니까 큰 상관은 없었지만 그런 느낌의 '사봐라'는 아니었다. 솜사탕 기계 옆으로 노점상이 쭉 늘어서 있었고,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번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번데기 먹을 거제?''
''번데기가 있나?''
밥이 안 먹힐 때 가끔 시장에서 번데기를 사다가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달달 볶아 드시던 게 기억났다. 솜사탕과 번데기를 들고 신나게 수목원으로 들어가는 우리는 마치 첫 소풍을 나온 국민학교 1학년 친구 같았다. 식물로 된 조형물들이 많이 보였으나 생각보다 국화는 많이 피어있지 않았다. 겨울왕국의 올라프 같은 캐릭터도 보였지만 우리는 그냥 단순한 동물 모양을 더 좋아했다. 평소에는 사진도 잘 찍지 않는 엄마를 구슬려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수목원을 크게 한 바퀴 돌다가 들어간 온실에는 바깥보다 훨씬 다양한 식물이 있었고 엄마는 온실에 더 큰 흥미를 가지는 듯했다. 나는 더워 죽겠다며 나가고 싶은 마음이 태산같이 솟았지만 엄마는 누가 데리고 나와주지 않으면 이 먼 곳까지 혼자 나오기 쉽지 않다고 생각하니 입을 다물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화분을 몇 가지 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구매할 수 없다는 직원의 말에 엄마는 금방 표정이 나빠졌다.
''엄마 여기서 쫌만 더 가면 화원유원지 있는데, 거기 강 같은 거 있거든? 엄마 물 좋아하잖아. 가볼래?''
''몇 시고? 아빠 밥 줘야 되는데.''
''아놔, 엄마. 아빠가 애도 아니고 냉장고에 반찬 다 있고 국 다 끓여놨는데 알아서 먹겠지!''
''아, 뭐. 그래. 가자!''
화원유원지는 대구수목원에 비하면 주차공간도 많이 비어있고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수목원보다 훨씬 많은 꽃이 곳곳에 피어있어 엄마의 흥미를 끌기에 딱 좋았다.
''야, 아까 거기보다 여기가 훨씬 낫다. 꽃도 다 피었고.''
''그제? 여기 오길 잘했제? 그냥 집에 갔으면 섭할 뻔했대이. 엄마 일로 잠깐만 와봐 봐.''
사실 화원유원지는 엄마가 한식대첩과 대구수목원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최후의 서비스 차원으로 알아봤던 것인데, 의외로 엄마의 반응은 화원유원지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몇 달 전 엄마와 부산에서 탔던 유람선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던지라 화원유원지에서의 유람선까지 만족스럽지 않다면 더 이상 엄마를 즐겁게 해 줄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누구보다 비장했다.
1인 1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엄마는 한번 놀랐지만 '부산에서 비싼 유람선도 재미없었는데 만 원짜리가 재미있을 리 있냐'며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그날 부산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엄마의 기억은 벡스코 화장실 휴지가 너무나도 부드럽고 좋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절대 그런 불상사가 생기면 안 돼. 시간에 맞추어 우리가 탈 배가 들어왔고 승선하려고 다가갔을 때, 정말 이보다 더 허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표정을 관찰하던 나는 '이번에도 틀린 걸까' 조마조마하게 배에 올랐고, 그 작고 허름한 배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올라탔다.
''엄마, 괜찮나?''
''뭐 아직 아무것도 없다.''
''불편하면 얘기해래이.''
''알았다.''
우리가 탄 배는 뱃머리를 돌려 강물을 가르기 시작했고 부산에서의 유람선처럼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는 풍경이 아니라, 바람을 직접 맞으며 즐길 수 있었다. 아마 부산에서도 밖으로 나가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날은 뭔가 잘 안 맞았던 것 같다. 유람선이 유턴하는 지점인 강정보 디아크를 처음 본 엄마는 저게 뭐냐고 물었고, 나 또한 그날 디아크를 처음 보았기에 '번데기 아니야?'하고 웃어버렸다. 엄마는 내 말이 웃겼는지 세상 들어본 적 없는 큰 소리로 웃어댔고, 나는 재빠른 검색으로 강정보 디아크라는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엄마는 번데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2만 5천 원짜리 유람선보다 1만 원짜리 유람선이 훨씬 재미있다며 주변에 우리밖에 없는 듯이 한참을 둘이서 웃어대다 화원유원지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엄마, 배 안 고프나?''
''배 고프지. 뭐 먹을 데 있나?''
''여기 사문진 주막 있대~ 엄마랑 나는 술은 안 먹으니까 가서 찌짐이나 먹자. 잔치국수도 있다 카드라.''
''찌찜 캐봐야 또 밀가루만 잔뜩 들어간 거 아니겠나.''
역시나 밖에서 사 먹는 음식에 대한 신뢰가 없는 엄마 답다고 생각했다. 특히 우리 엄마는 찌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부치는 사람이었다. 제발 엄마가 상상하는 밀가루떡이 아니어야 할 텐데. 긴장의 연속이었다.
''잔치국수 하나, 부추전 하나, 오뎅 하나 주세요.''
''맛없으면 우짤라고 그래 많이 시키는데? 또 바가지 쓰는 거 아이가?''
''아이고, 맛없어도 내가 다~ 먹을 거고 돈도 내가 내는 거니까 걱정 마쇼~ 비싸지도 않다.''
금방 차려진 한 상을 들고 자리를 잡았을 때 엄마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감탄사가 나왔다.
''야, 정구지찌짐에 밀가루가 없다야. 이거 진짜 기술인데.''
''아이고, 어련하시겠어요. 찌찜 기술자님.''
''무봐라. 맛도 있다.''
흔치 않은 엄마의 감탄에 붙잡고 있던 긴장을 놓았다. 유람선도 재미있고 음식도 맛있으니 오늘은 성공이야.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귀가 하기 위해 주차장에 가던 길에 왠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보였다. 평소의 나라면 남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텐데 이상하게 고개를 빼꼼 내다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오리모양 전기차가 있었고, 역시나 그 오리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그의 보호자들이었다.
''나 저거 타보고 싶은데….''
''아들 타는 거 아이가?''
''몰라. 애들 줄 서있는 거 보니까 그런 거 같은데, 나이 제한 있는지 물어보까?''
''남사시럽구로 와 이카노?''
나는 매표소에서 나이제한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2장의 표를 끊었다.
''엄마! 제한 없대! 2장 끊었어!''
''아이고…. 저거 언제 철드노.''
화원유원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었을 것 같은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떠드는 다 큰 딸이 부끄러우셨을까. 엄마는 쭈뼛쭈뼛 하며서도 내 옆에 꼭 붙어 앉았다.
''어른만 타러 오시는 경우는 잘 없긴 해요.''
''아, 제가 우리집 애거든요! 어린이 연극도 엄마랑 둘이 보러 갔다 왔는데요!''
''야가 몸만 컸지, 애라요. 하하….''
전기오리차에서는 나와 비슷한 또래인 운전기사의 취향인 듯한 90년대 댄스 리믹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언제나 어디서나 노래만 나오면 따라 부르는 나는 그날도 역시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노래하고 있었다.
''따님이 노래를 잘하시네요.''
''시끄럽지요. 쟈가 노래하는 거를 좋아해 가지고…. 하하하….''
''아니요. 듣기 좋은데요. 잘하네요.''
''쟈가 고등학교 때는 가요제 나가가 상도 받고 그랬어요.''
나는 노래에 심취하여 들리지 않는 척했지만 엄마가 나를 자랑하는 그 모습이 좋았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상위 몇 프로만 들어간다는 심화수업반에 들어갔던 그때 이후로 이렇게나 나에 대해 신나게 자랑할 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딱히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딸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더 크게 노래를 불렀고 잠자코 듣고 있던 누군가가 나와 함께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출발했던 오리차는 금방 여러 사람이 노래하는 시끌벅적 축제가 되었고 다들 자연스러운 농담과 웃음으로 한껏 신이 나 있었다.
''여기는 카페가 있는데 음료수 드실 분들은 내리셨다가 다음 차 타고 오시면 돼요.''
''네~''
나처럼 흥분해서 목이 말랐던 몇 명의 승객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잠시 쉬게 되었고 같이 신나게 리듬을 타던 승객 한 분이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그 집 따님은 노래를 잘하네요. 우찌 그래 잘 하시노.''
''집에서도 맨날 들고뛰고 난리라요. 노래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는가.''
''우리 아는 노래 한 마디를 하라 캐도 죽어도 안 하는데, 부럽네요.''
그 당시만 해도 mbti처럼 성격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없었을 때이고, 내향인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몰아붙일 때였으니 대뜸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내가 신기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나보다도 엄마가 한껏 신이 나, 내 자랑이랍시고 별소리를 다 하고 있는 것도 나는 좋았다. 집에만 갇혀 있던 엄마가 전혀 모르는 사람과 이렇게 한풀이하듯 얘기 나누는 것을 보니 뭔가 짠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두 분이 대화를 나누다가 다음 오리차를 타고 내려올 때는 차에서 동요가 흘러나왔는데, 나는 어떤 음악이든 따라 부를 수 있으면 모조리 따라 불렀다. 내려오는 오리차도 축제였다.
단 하루동안 나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엄마의 많은 모습을 보았고 그만큼 기뻤다. 엄마도 화원유원지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다음에 꼭 다시 오자고 했었는데 코로나가 터져버렸고 엄마는 코로나가 다 사라지기도 전에 코로나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