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선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내가 모르게 또는 알게 서너 번의 큰 수술을 연달아했다. 담낭 제거와 갑상선 수술 때는 나도 사실 '누구나 많이들 하는 수술' 정도로만 생각했고, 엄마도 평소처럼 일상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기에 점점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새벽마다 신지로이드를 챙겨 먹는 엄마를 보면서도 '귀찮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게 엄마 생명줄이란 생각도 못했다. 엄마가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닌데, 나는 내가 아프고 나서야 그걸 알았다. 금방 예전처럼 마음이 조금만 안 맞아도 싸우기 일쑤였다. 어느 날부터 엄마가 서울 병원에 가는 횟수가 잦아지고 기간도 길어졌다. 자연스럽게 나도 엄마를 만나는 날이 줄었다. 엄마는 흉선암이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언니가 평일 내내 엄마 병실에 상주해 있었고, 지역에 있던 나는 주말에만 병원에 들르는 정도가 되었다. 언니는 간호라기보다 보호에 가깝다고 웃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 옆에 붙어있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빠가 허리디스크로 입원했던 며칠간 함께 있는 것도 온몸이 쑤시고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는데, 나였다면 벌써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을 거라 했다. 병원식도 입에 맞지 않다며 투정하는 엄마를 위해 언니는 신촌 병원에서 지하철을 타고 움직여야 하는 망원시장까지 장을 보러 다녔다.
엄마가 큰 수술을 했다기에 다급히 병실에 들렀을 때 엄마는 커튼을 치고 환자복을 입는 중이었고, 새빨간 수술자국은 등에서부터 허리까지 몸통의 절반 이상을 따라 나있었다. 수술 직후라 아물지도 않은 칼자국에 놀란 나는 큰 소리를 낼 뻔했지만 그러면 나보다 엄마가 더 놀랄 것 같았다. 나야 엄마에 비하면 가벼운 복강경 수술을 했었으니 이렇게까지 큰 수술자국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수술자국이 이만큼이나 크게 될 정도로 심각한 건가? 이렇게 몸통을 크게 갈랐는데 수술하는 동안 엄마는 어떤 상태로 누워있었던 거지? 혹시 까딱 잘못하면 수술한 곳이 터지지는 않을까? 머릿속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간호사가 보호자인 우리에게 지시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언니는 엄마가 하기 싫다고 하면 더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 살려면 움직여.'라며 억지로라도 하게 했다. 내가 수술 후 걷기 싫다고 찡찡댈 때 엄마가 나를 일으켜 세웠듯이 나도 엄마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결국 엄마는 분노를 터뜨리며 '자꾸 머라 할 거면 오지 마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끝까지 '살려면 해야 된다잖아!'고 맞받아쳤다. 그제야 언니가 '간호'가 아닌 '보호'를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때마침 간호사가 들어와 우리의 실랑이를 관전했다.
''큰 따님은 엄마가 하기 싫다면 안 시키는데, 작은 따님은 끝까지 시키죠? 빨리 나으려면 작은 따님이 하자는 대로 하시는게 좋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는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나는 엄마 곁에 오래 있지 못했다. 언니한테 듣기로는 나중에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에도 내가 오는 걸 끔찍이 싫어했다고 했다. 하지만 언니도 볼일을 봐야 하고 쉬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내가 가는 날도 있었다. 한 번은, 엄마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너무 싫어하니 원래 장 보러 나가기로 했던 언니가 병실에 남고 내가 장 볼 목록을 받아서 심부름을 했던 적도 있었다. 언니는 길치인 나에게 망원시장 어디쯤 어떤 이름의 가게에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 상세하게 적은 종이를 건넸고, 그것이 모두의 평화를 위해 최선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때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망원시장에 카페 오픈 준비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혹여나 심부름 목록을 다 채우고서, 들를 수 있다면 스치듯 지나가 보고도 싶었다. 그런 나의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눌러 참으며 언니의 심부름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그 카페에 대한 생각이 사그라들었다. 목록대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 나는 지하철로 향하기 직전 혹시나 하고 먼발치를 쳐다보았고 내 시선 안에 그 멤버가 공사용 앞치마를 두른 채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들어왔다. 그 멤버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개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렇게 일거양득 한 나는 한껏 좋은 기분으로 엄마 병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언니는 왠지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고 있는 엄마를 두고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전에 내가 보냈던 기사 읽어 봤나?''
''아…. 그 아이돌 흉선암?''
''걔 죽었대.''
''???''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흉선암이라는 것이 엄마에게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흉선암이 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수술하면 얼마나 살 수 있는지, 희귀암이라는데 치료 방법은 있는지, 이미 큰 수술을 몇 차례나 했던 엄마가 그 치료들을 버틸 수는 있을지 걱정을 한가득 안고 검색하던 도중에 발견한 기사였다.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라.''
''말 못 하지…. 아니, 그때는 치료받고 있다고 했었잖아. 왜 갑자기….''
''모르겠다, 나도.''
2013년 흉선암으로 아이돌 출신 배우가 사망한 그때부터 언니와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흉선암 치료 중에 갑자기 왔던 대상포진과 중증근무력증으로 중환자실까지 가게 되었을 때는 이제 정말 보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숨을 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본인의 의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은 자아가 강한 엄마로서도 견디기 힘든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나온 이후로도 어떻게든 버텨서 예상보다 몇 년이나 더 살아준 것이, 이제 와서야 엄마의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투정을 부려서 더 연장할 수 있는 생명이었다면 나는 기꺼이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