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4기다!] - 13.
최초 4기 진단을 받았던 당시에는 진료는 4주마다 봤었고 정기 검사는 3개월마다 한 번씩 봤었던 것을 지금은 진료는 8주마다, 정기 검사는 4개월에 한 번으로 기간이 조금 늘어났다. 담당 교수님을 2개월 여만에 만나도 괜찮을 정도로 지금 내 몸 상태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뜻. 궁극의 목표는 담당 교수님을 만나는 기간이 조금조금 늘어나는 것이지만 2년 전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내 몸 상태가 극악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 수준이어도 온 세상 만물에 감사하고픈 마음이다.
원래부터도 나는 내 병 진료를 담당하시는 교수님들께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별다른 질문이나 토(?)를 달지 않는 편이다. 이게 의료진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인 것인지 아니면 맹목적인 쫄(??) 상태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게 필요한 이야기면 해주실 것이고, 굳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라면 내가 몰라도 되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라는 생각.
그런 점에서 지금 내 진료를 봐주고 계시는 교수님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좀 특별하신 분이다. 1기였던 시절부터 나름 병원을 다닌 역사가 꽤 되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검사 결과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보여주시는 분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작년 4월, 담당 교수님의 오더로 정기 검사 후 추가로 PET-CT(이하, 펫)를 찍게 되었다. 이 검사는 전신에 암세포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검사로 알려져 있는데, 뼈스캔만으로는 현재 내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검사 결과는 펫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같이 듣자는 말과 함께 한 달 정도를 또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렸다.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 게 뭐가 있겠나 싶다가도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나는 도대체 마음을 어떻게 다잡아야 할까 하는 걱정들이 참 끈질기게도 따라붙었다.
심란했던 한 달을 보내고 드디어 진료 당일.
무슨 말을 들어도 절대로 무너지지 말자며 계속 마음을 다독이며 진료실에 들어갔고, 그런 내게 교수님은 당신께서 보고 계시던 모니터 3개 중 2개를 내가 잘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돌려주시며 "왼쪽은 작년 9월 병원에 처음 오셨을 때 찍은 거고, 오른쪽은 이번에 찍으신 거예요"라고 하며 사진 두 개를 모니터에 띄워 보여주셨다.
1기였던 시절부터 각종 검사들을 받아왔던 나지만 한 번도 그 결과 사진을 본 적은 없었다. 일부 환자분들 중에서는 영상 검사 자료를 직접 발급받아 살펴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만, 나는 굳이 그렇게 할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영역은 내가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만약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교수님이 알려주셨겠지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런 내게, 심지어 내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교수님께서 먼저 결과 사진을 보여주다니...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처음 보게 된 나의 검사 결과 사진. 보고는 있지만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인지 몰라서 단어 그대로 '보고만'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붙여주시는 추가 코멘트.
"뇌랑 신장 빼고, 사진에 밝게 보이는 부분들이 암이 있는 곳들이에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전이 진단 직후 촬영한 펫 사진을 보니 헛웃음이 픽 터졌다.
아니 왜 야시장 알전구가 내 몸속에 켜져 있는 건데? 그것도 어쩌다 한 두 개도 아니고 온 뼈에 주렁주렁 많기도 하네?
이 펫 사진 가지고 '인체의 뼈는 이렇게 생겼습니다'를 설명해도 될 정도로 온몸의 뼈마다, 과학실에서 뼈 표본을 봤던 모습 그대로 알전구가 촤르르륵- 참 많이도 켜져 있었다. 다발성 뼈 전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다발성인 줄은 미처 몰랐지 뭐야. 게다가... 여기는 뼈가 아닌 것 같은데 불빛이 있다고?? 나 뼈전이 외에는 다른 곳 전이 이야기는 못 들었었는데???
당시 직접적인 통증은 고관절과 등에 있었지만 사진을 보고 나니 통증이 문제가 아니었을 정도로 병원을 처음 갔을 때 내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제야 2022년 9월 처음 병원을 갔을 때 교수님이 내게 보였던 반응의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나의 상태 대비 교수님께서 얼마나 다정하게 말씀해 주셨는지도. 척추 신경 손상, 영구 보행 장애 등등의 이야기를 하셔서 '역시 의료진은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참 냉정하게도 이야기하는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그 당시 나의 상태는 내일 당장 그런 상황들이 싹 다 생겨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고, 그런 중에 교수님은 되려 환자인 내가 충격받지 않을 정도에서 전해야 할 최소한의 정보만 전해주신 것이란 것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옆 모니터를 보니 그 많았던 알전구들은 다 어디 가고 깜깜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교수님께서 다시 첨언해 주셨다.
"두 사진 비교해 보시면 여기 목 밑으로 까맣게 보이시죠? 작년 9월에 있던 암세포들이 이만큼 다 없어졌다는 뜻이에요."
교수님께서 검사 결과 사진을 보여주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의미는 '내가 지금 얼마나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지금도 교수님은 검사를 하고 나면 그전 검사 결과와 비교하여 현 상태가 어떤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시는데 이게 지금의 나에게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힘과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다. 지금 현재 나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직접 볼 수 있게 해 주어서, 지금 쓰고 있는 약이 잘 듣고 있으니 용기 잃지 말고 힘내서 계속 잘 치료해 보자는 교수님 나름의 응원이 아닐는지.
물론 교수님은 이런 의도로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 내 나름대로 나에게 맞게 잘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