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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나 Aug 21. 2024

몸속의 알전구

[이번엔 4기다!] - 13.

최초 4기 진단을 받았던 당시에는 진료는 4주마다 봤었고 정기 검사는 3개월마다 한 번씩 봤었던 것을 지금은 진료는 8주마다, 정기 검사는 4개월에 한 번으로 기간이 조금 늘어났다. 담당 교수님을 2개월 여만에 만나도 괜찮을 정도로 지금 내 몸 상태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뜻. 궁극의 목표는 담당 교수님을 만나는 기간이 조금조금 늘어나는 것이지만 2년 전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내 몸 상태가 극악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 수준이어도 온 세상 만물에 감사하고픈 마음이다.


원래부터도 나는 내 병 진료를 담당하시는 교수님들께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별다른 질문이나 토(?)를 달지 않는 편이다. 이게 의료진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인 것인지 아니면 맹목적인 쫄(??) 상태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게 필요한 이야기면 해주실 것이고, 굳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라면 내가 몰라도 되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라는 생각.

그런 점에서 지금 내 진료를 봐주고 계시는 교수님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좀 특별하신 분이다. 1기였던 시절부터 나름 병원을 다닌 역사가 꽤 되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검사 결과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보여주시는 분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작년 4월, 담당 교수님의 오더로 정기 검사 후 추가로 PET-CT(이하, 펫)를 찍게 되었다. 이 검사는 전신에 암세포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검사로 알려져 있는데, 뼈스캔만으로는 현재 내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검사 결과는 펫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같이 듣자는 말과 함께 한 달 정도를 또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렸다.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 게 뭐가 있겠나 싶다가도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나는 도대체 마음을 어떻게 다잡아야 할까 하는 걱정들이 참 끈질기게도 따라붙었다.


심란했던 한 달을 보내고 드디어 진료 당일.

무슨 말을 들어도 절대로 무너지지 말자며 계속 마음을 다독이며 진료실에 들어갔고, 그런 내게 교수님은 당신께서 보고 계시던 모니터 3개 중 2개를 내가 잘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돌려주시며 "왼쪽은 작년 9월 병원에 처음 오셨을 찍은 거고, 오른쪽은 이번에 찍으신 거예요"라고 하며 사진 개를 모니터에 띄워 보여주셨다.

1기였던 시절부터 각종 검사들을 받아왔던 나지만 한 번도 그 결과 사진을 본 적은 없었다. 일부 환자분들 중에서는 영상 검사 자료를 직접 발급받아 살펴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만, 나는 굳이 그렇게 할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영역은 내가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만약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교수님이 알려주셨겠지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런 내게, 심지어 내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교수님께서 먼저 결과 사진을 보여주다니...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처음 보게 나의 검사 결과 사진. 보고는 있지만 이게 의미하는 것인지 몰라서 단어 그대로 '보고만'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붙여주시는 추가 코멘트.


"뇌랑 신장 빼고, 사진에 밝게 보이는 부분들이 암이 있는 곳들이에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전이 진단 직후 촬영한 사진을 보니 헛웃음이 터졌다.

아니 야시장 알전구가 몸속에 켜져 있는 건데? 그것도 어쩌다 개도 아니고 뼈에 주렁주렁 많기도 하네?

사진 가지고 '인체의 뼈는 이렇게 생겼습니다'를 설명해도 정도로 온몸의 뼈마다, 과학실에서 표본을 봤던 모습 그대로 알전구가 촤르르륵- 많이도 켜져 있었다. 다발성 뼈 전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정도로 다발성인 줄은 미처 몰랐지 뭐야. 게다가... 여기는 뼈가 아닌 은데 불빛이 있다고?? 나 뼈전이 외에는 다른 곳 전이 이야기는 못 들었었는데???

당시 직접적인 통증은 고관절과 등에 있었지만 사진을 보고 나니 통증이 문제가 아니었을 정도로 병원을 처음 갔을 때 내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제야 2022년 9월 처음 병원을 갔을 때 교수님이 내게 보였던 반응의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나의 상태 대비 교수님께서 얼마나 다정하게 말씀해 주셨는지도. 척추 신경 손상, 영구 보행 장애 등등의 이야기를 하셔서 '역시 의료진은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참 냉정하게도 이야기하는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그 당시 나의 상태는 내일 당장 그런 상황들이 싹 다 생겨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고, 그런 중에 교수님은 되려 환자인 내가 충격받지 않을 정도에서 전해야 할 최소한의 정보만 전해주신 것이란 것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옆 모니터를 보니 그 많았던 알전구들은 다 어디 가고 깜깜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교수님께서 다시 첨언해 주셨다.


"두 사진 비교해 보시면 여기 목 밑으로 까맣게 보이시죠? 작년 9월에 있던 암세포들이 이만큼 다 없어졌다는 뜻이에요."




교수님께서 검사 결과 사진을 보여주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의미는 '내가 지금 얼마나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지금도 교수님은 검사를 하고 나면 그전 검사 결과와 비교하여 현 상태가 어떤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시는데 이게 지금의 나에게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힘과 용기를 낼 수 있게 해 준다. 지금 현재 나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직접 볼 수 있게 해 주어서, 지금 쓰고 있는 약이 잘 듣고 있으니 용기 잃지 말고 힘내서 계속 잘 치료해 보자는 교수님 나름의 응원이 아닐는지.


물론 교수님은 이런 의도로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 내 나름대로 나에게 맞게 잘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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