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나 Aug 05. 2024

4기 유방암 환자가 되면서 얻은 것들

[이번엔 4기다!] - 12.

제목을 써놓고 보니 나도 헛웃음이 터지긴 한다. '얻다'의 정의가 '긍정적인 태도, 반응, 상태 따위를 가지거나 누리게 되다'인데 이 병 덕분에 "긍정적으로" 얻은 것이라니. 솔직히 지금부터 내가 얻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에 동의하실 수 있는 비슷한 처지의 분들이 과연 얼마나 계실까 싶다. 실상은 모든 것을 다 앗아간다고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병 덕분에 얻은 것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거저 얻지는 않았다. 전이 진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처절하리만큼 무너져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다듬어낸 내 노력의 결과물이니 말이다.




1. 환자임을 온전히 받아들이다

처음 1기 진단을 받았던 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난 끊임없이 내가 처한 상황을 가볍게 만들고자 많은 노력을 했었다. 당시에는 내가 이 무서운 병을 참 의연히도 잘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나는 나에게 닥친 상황들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가 바로 병원 갈 때마다 병원에 안 가려는 마음이 커졌던 나의 태도다. 표준치료 과정이 끝나고 나면 이후부터는 정기 검사를 받으며 별다른 이상이 생기지 않는지를 살피게 되는데 당시 나는 이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치료 종료 후 5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검사하느라 CT며 뼈스캔 등등 하는 것들 때문에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이 지금 내 건강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이제는 검사를 안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실인양 주장하는 수준이었다. 급기야는 정기 검사가 마무리되는 10년째 마지막 검사는 자체적으로 패스해 버렸다. 10년이나 아무 문제없었는데 굳이 이 검사는 할 필요가 없다는 똥논리를 펼치며.

저 당시 내가 저랬던 이유는 간단하다. 혹시라도 이번 검사에서 전이나 재발이 발견되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컸기 때문에 혹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했던 발악이었던 것이다. 방어기제 중 회피를 엄청나게 활용했던 거지.

그렇지만 이 세상 모든 문제들은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올바른 해결 방법에서 점점 멀어진다. 내가 유방암 환자였고, 이 병에 다시 노출될 확률이 병에 걸리지 않은 다른 이들보다는 확연히 높아졌다는 그 사실을 오롯이 잘 받아들였다면 병을 대하는 나의 몸과 마음의 자세가 달랐을 텐데, 난 그저 이 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만을 꿈꾸고 있었다. 멀어지고 싶다고 해서 멀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환자가 아닌 듯 10여 년을 말도 안 되게 열심히 살았고, 마지막 검사 후 정확히 3년이 되는 시점에 나는 다시 환자가 되었다. 그것도 치료 종료 시점이 없는, 문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약과 병원을 가까이해야 하는 레벨의 환자.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돌고 돌아 내가 환자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내가 환자라는 것을 온전히 인지하고 있다. 상황이 극적으로 몰리고 나서야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주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정신 못 차리고 예전처럼 또 열심히 도망 다니기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현재 나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지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2. 전이가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내가 처한 상황 혹은 내 속에서 드는 생각이 막연할 경우 그 막연함이 주는 공포가 있다.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 내리지는 못하겠는데 그냥 어쩐지 무서운 그런 것. 10여 년 전 나에겐 병의 재발과 전이가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재발과 전이가 왜 무서운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암튼 그런 상황이 생기는 것은 막연히 무서웠다.

그러나 이미 전이가 된 나는 이제 더 이상 전이가 무섭지 않게 되었다. 좀 심각한 수준이긴 했으나 아직까지는 뼈전이만 있다 보니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더 이상 '전이'라는 단어가 예전처럼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나의 투병 라이프 속에서 암세포 전이는 더 이상 생뚱맞은 상황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도 있지만, 예전에는 막연히 무서웠던 전이가 어떤 것인지를 지금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보니 '그냥 잘 치료하고 관리하면 되는 것' 정도로 비교적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덕분이 아닐까 싶다.


3. 죽음에 대한 나의 시각 =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가짐

예전에 썼던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내용이지만 전이 진단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나를 힘들게 했던 생각은 '이제 나 곧 죽는 것인가'였고, 이게 정말 많이 무서웠었다. 이 생각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는데 어느 날엔가 '죽는다는 것이 대체 왜 무서운 것인가'하는 굉장히 철학스러운 질문이 마음속에서 일었고, 그때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다고 진짜 끈질기게 꼬꼬무 스타일로 질답을 이어갔다. 그 결과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니 현재를 잘 사는 것이 중요하고,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으려면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한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참 이상했다. 난 분명 '죽음'을 물고 늘어졌는데 도출되는 결론은 계속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라니.

철학에는 조예랄 게 없을 수준이라 저 두 개의 상반된 의미가 어떻게 관통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나오는 결론은 동일하니 그렇다면 저 결론대로 살아보자고 마음먹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실 저 결론이 아니었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을 잘 살아내는 것' 외에는 딱히 없기도 하다. 죽는 것이 두렵고, 언젠가 더 이상 쓸 수 있는 약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슬픈 미래에 잡아먹혀서 온종일 그것만 붙들고 있기에 이제는 정말로 나에게 허락된 삶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하며 눈물 바람을 할 바에는 차라리 재미난 영화나 책을 보며 깔깔거리는 것이 지금의 나를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 병 덕분에 내가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주욱 쓰다 보니, 핵심은 '직면'인 것 같다.

많은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는 이 병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어느 때보다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이 병과 동행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이 병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편안하게 잘 받아들여야만 이 병으로 인해 불편해진 점들을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하기 싫어서 도망치다 보면 결국 어느 순간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되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고 나서야 내가 죽도록 도망치던 것과 마주하게 된다. 기껏 숨차게 도망 다닌 결과가 '마주하기'라면 굳이 아까운 에너지 써가면서 힘들기 전에 눈 딱 감고 용기 내서 마주 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지만 지금에서야 알게 된 이유가 분명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4기 유방암 환자가 되면서 변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