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불편함들

[이번엔 4기다!] - 20.

by 희나

그동안 썼던 글들을 주욱 살펴보니... 역시 대학원 복학 이후로 제대로 각성(?)을 하여 씩씩하게 삶을 잘 꾸려오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몸을 해가지고 강의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하루의 대부분을 업무에 에너지를 쏟고 있으니... 정말 나 스스로 기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늘 씩씩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정신은 원래부터 늘 씩씩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만약 주변 누군가, 특히 중병을 앓고 있는 자가 늘 씩씩하고 자기는 괜찮다고 말을 한다면 필히 주의 깊게 살펴보시길.)


오늘은 그래서,

4기 진단 이후 나만 알고 있는 여러 불편한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유방암 4기, 그중에서도 뼈 여기저기에 암세포가 퍼진 "다발성 뼈전이" 환자이다.

경추와 요추 가릴 것 없이 척추 전반에 걸쳐, 갈비뼈 여기저기와 양쪽 고관절까지 어느 곳 하나 거를 곳 없이 전이가 될 수 있는 부위는 어지간히 다 퍼진 상태로 병원에 갔었다.

병원을 갔던 당시에는 양쪽 고관절에 퍼진 암세포들로 인한 극심한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상태였고, 처음 진료를 봤던 당시 교수님으로부터 "암세포가 척추 신경을 건드리면 보행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정도로 내 몸은 말이 아닌 상황이었다.


당시 통증을 떠올려보자면... 양쪽 다리는 움직이지만 않으면 그래도 통증에서 좀 벗어날 수 있었지만, 등이 정말 너무 심하게 아팠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눕는 것도, 자세를 바꾸는 것도,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그 시절.

다행히 키스칼리와 페마라, 졸라덱스, 엑스지바가 몸속에서 열심히 활동해 주는 덕분에 약 복용 후 4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무렵 Pet-CT를 한 번 더 찍었었는데, 진단 초반 촬영했던 것과 비교하여 보니 몸속 암병변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의문은, 나는 분명 뼈전이만 알고 있었는데... 진단 초반 Pet 사진에는 뼈가 아닌 지점에도 형광불이 여기저기 들어와 있었다는... 질문해보고 싶었으나 교수님께서 언급하시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 굳이 일부러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아마 지금 내가 예상하는 그게 맞다면... 진단 초반 당시에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다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워낙에 전신에 빡빡하게 퍼져 있었고, 특히 아슬아슬하게 신경을 잠식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일부 건드려진 곳들이 있어서인지 신경통 같은 증상들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1. 하체


가장 확실한 증상으로는 허리 통증이 있다. 좀 서 있었거나 어느 정도 앉아있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허리에 불편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오래 서 있는 것도 어렵고,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어렵다. 오래 서 있으면 무릎이 뻣뻣해지면서 허리에 통증이 오고, 오래 앉아 있으면 골반과 허리에 집중적으로 통증이 느껴진다.


특히 무릎... 이거 때문에 동네 정형외과를 얼마나 갔는지 모른다. 통증으로만 시작했던 무릎의 불편감은 이내 물이 차는 증상으로까지 연결되었는데, 원인을 찾기 위해 MRI까지 촬영했으나 뚜렷한 원인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양쪽 무릎이 번갈아가며 물이 찼고, 이런저런 약을 써본 결과 지금은 다행히 내 증상을 감경시켜 줄 수 있는 약들을 찾아서 복용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시점 즈음이면 무릎에 문제가 생기겠다는 것을 증상으로 알 수 있어서 그에 맞춰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잘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발병 전에는 없었던 발바닥 통증이 생겼다. 양쪽 발바닥에 똑같이 증상이 발현되었는데 이 덕분에 집에서도 늘 쿠션감 있는 슬리퍼를 신고 있고, 외출 시에도 가급적이면 발이 편한 신발을 찾아 신고 있다. 강의나 업무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 구두를 신는 날이면 발바닥에서 불이 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하체 쪽 관절들이 많이 약해졌다. 원래도 발목이 약한 편이라 수시로 염좌가 발생했었지만, 이제는 염좌가 아니라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굉장한 수준의 통증이 순간적으로 팍- 하고 온다. 이 역시도 MRI 촬영을 하였으나 현재 발목 인대가 늘어난 상태여서 바로 잡으려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하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자가 아닌 맨바닥에 앉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앉을 때도 몹시 힘들게 앉아야 하는데 일어설 때는 온몸을 다 써서 일어나야 한다. 예전에 아프지 않았을 때는 바닥에 어떻게 앉고 일어섰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


2. 상체


원래 나는 양쪽 팔이 굉장히 유연한 편이었다.(등 뒤로 넘겨서 악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그런데 발병과 동시에 오른쪽 팔에 문제가 생겼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른팔 바깥쪽에 굉장한 불편감이 느껴졌고, 이 때문에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것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오른팔의 가동 범위가 예전에 비해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운동으로 꾸준히 풀어준 덕분에 불편감은 많이 줄었고 가동 범위도 많이 넓어졌지만, 당연히 예전 수준으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목이 굉장히 아프다. 이 통증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굉장히 기분 나쁘게 아프다. 마치 이 통증을 따라가면 암세포가 이렇게 퍼졌었나 보구나.. 와 같은 그런 느낌으로.

목이 이렇게 아프다 보니 두통이 빈번히 발생한다. 원래도 두통은 친구처럼 달고 살았었는데 이제는 목을 조금만 잘못 가누고 있어도 바로 두통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두통은 진통제를 먹는다고 빨리 듣지도 않는다.


머리카락이 많이 얇아졌고 하루에 빠지는 양도 늘었다. 키스칼리가 급격한 탈모를 야기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굉장히 많은 단백질을 필요로 해서인지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잘 관리를 한다고 해도 머릿결이 별로 좋지 않다.(미용실 원장님이 머릿결을 보시고는 나더러 다이어트 심하게 했냐고 물어보실 정도였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손톱과 발톱도 종전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 그래서 정말 잘 관리해야 한다.


3. 정신건강


대개 밝고 씩씩하고 즐겁게 잘 지내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그렇지는 않다. 이는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당연한 것이다. 아픈 곳 없이 멀쩡한 사람도 신체 컨디션에 따라 감정 기복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하물며 중병 중에서도 높은 기수에 랭크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요즘의 나는 이게 좀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별 특별한 상황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그냥 이쯤에서 내 삶이 끝나면 더 힘든 것 없이 평온해지겠지?'와 같은 생각이 훅 들어차는 것이다. 심지어는 평온한 상태일 때도 이따금씩 저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통증을 심하게 느끼던 때에는 그 빈도가 잦았었고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어쨌든 분명한 점은 병 진단 전보다는 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서 혼자 참 많이 생각했는데, 내린 결론은 '감정 그대로를 수용하고 인정하자'였다.

"어머 어떻게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니?"도 아니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지금 잘 살고 있는데 배가 불렀구나?"도 아니고,

"가족들이 나 때문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니?"도 아니고,

그냥 나의 마음에 좀 더 집중하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내 상황이면 그런 생각 들 수 있지"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오늘 내가 뭔가 마음이 조금 힘든 게 있나 보다"

"힘들 수 있지. 근데 힘든 걸 그대로 방치하면 더 힘들어지니 힘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 세 가지 정도의 생각을 반복하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나름대로 하는 중이다.


이게... 그렇다.

아무리 씩씩하게 잘 지낸다고 해도 내가 4기 암환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발병 전과 사뭇 달라진 현재가 가끔 굉장히 강력하게 피부에 와닿을 때가 있다 보니, 내 마음 상태를 알면 찰랑이는 물결 정도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모를 경우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다스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발병 전에도 나름 심리에 관심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내 마음 들여다보기는 본격적으로 하는 중이다.

이 좋은 세상, 누릴 수 있는 건 최대한 누려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언급한 것들 외에도 불편한 점들이 여럿 있겠으나, 대부분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불편함을 끼치지 않아서 기억에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내 삶의 모토가 "그럴 수 있지 뭐"여서 어지간한 불편함, 심지어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까지도 "4기 정도 되는데 이 정도 불편함이야 당연하겠지 뭐" 정신으로 잘 달래고 다스리면서 사는 중이니.


당연히 쉽지는 않다. 나도 마음을 다잡고 여기까지 오는 것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면 또 어찌어찌할 수 있기는 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해야지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절박함 덕분에 해낸 것일 수도 있겠구나.


여러 불편한 점들을 이고 지고 끼고 살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불편한 점들은 '굉장히 성가신데 버릴 수는 없는 친구들' 정도로 정의했더니 그 나름대로 또 잘 받아들일 수 있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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