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온도

내 말은 아직 따뜻한가

by 희노가

오랜 기침으로 성대가 상했는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 이제 왔다고 친구들에게 전화도 하고 싶고, 새해인사도 목소리로 전하고 싶은데. 입을 열면 쇠가 스르렁거리는 소리가 나와 말을 오래 할 수가 없다.

이 참에 잠자코 입을 좀 길게 다물고 당분간 문자로만 이야기할까도 싶지만, 텍스트 너머의 음성으로 전해지는 온도가 있기에 말로 하는 다정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한국에 도착한 날, 엄마는 "그동안 집이 절간 같았어. 말할 사람이 없어서 답답했어"라고 하시며 반가워하셨다. 나보다는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손자가 돌아온 것이 더 반가우셨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친구도 많으면서 왜 말할 사람이 없다고 하시는 걸까.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아직 현역으로 일을 하시고, 매일 사무실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도 하시기 때문에 일정량의 말을 낮에 다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그런데 집에서 혼자 계시면서 입에서 말이 갈 자리를 찾지 못하던 엄마는 이미 말을 소진한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싶으실 것이고, 두 분 사이에 온도차가 생기는 것이다. 성격이 쾌활한 엄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사실 나도 요가원을 운영할 때, 수업을 하면서 말을 하기 때문에 집에 오면 입을 딱 닫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집에 오면 말을 쉬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흔히들 남자, 여자는 하루에 평균 몇 단어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개인에 따라 말의 양이라는 것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말'을 하는 것은 마음을 쓰는 것이며 에너지를 쓰는 일임은 확실하다.


우리는 말과 글이 때로는 헐크 같은 힘을 발휘하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말은 즉각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하나의 씨앗이 되어 사람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어떤 것은 계속 생채기를 내는 가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나 역시 경험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중학교 시절, 상미라는 친구가 있었다. 얼굴이 하얘서 코와 볼 주변에 주근깨가 있었고, 약간 통통한 체격에 뭔가 외국아이 같았다. 그 친구는 평소에 반에서 튀거나 말을 많이 하는 아이는 아니지만 가끔 입을 열면 재치가 있고 재미있었다. 한 번은 상미와 내가 짝꿍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상미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00야, 너는 나중에 결혼하면 남편한테 엄청 사랑받고 살 것 같아.”

난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뭘 보고 그런 생각을 했냐며 크게 웃었다. 그랬더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너는 다른 사람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을 거야. 좋은 가정도 꾸리고 말이야. 널 보면 그런 게 느껴져.” 하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의 아이가 그런 말을 친구한테 했다는 것이 재밌지 않은가.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한 번 한 것이 아니라, "넌 참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살 거야"라고 자주 말해주었다. 그때는 사실 잘 몰랐다. 친구가 해 준 이야기가 내 마음에 얼마나 좋은 씨앗을 뿌렸는지, 그 씨앗이 뿌리를 내려 나를 응원해 주었는지를 말이다. 어른이 되어 세상에 상처받고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날에 내가 늘 회복하여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상미 같은 친구의 '긍정적인 말'과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다정한 한 마디' 덕분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대한민국의 중위나이가 되어버린 나는 요새 ''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지금 내 나이는 '몰라서' 그랬다, '어려서 말 실수했다'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나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책임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말'을 잘하고 살고 싶어서 여러 번 읽었던 <말그릇>이란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말을 대단히 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가 쏟아내는 말들이 제대로 숙성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게 더 중요하다. 가까운 누군가를 지켜내기에 충분한 말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나이 들수록 나의 말 그릇이 제대로 깊어지고 있는지, 적당히 채워지고 비워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해를 넘길 때마다 나이와 주름살을 확인하듯 자신의 말 그릇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말을 잘 고르는 편일지도 모른다. 부단히 애를 쓴다고 해도 좋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가족들과 대화할 때는 날 것 그대로의 말들이 나와서 때로는 뾰족하게 날아간다. 가족들은 편하다는 이유로, 말 거름망을 촘촘히 두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의 말습관'을 그대로 답습해가고 있는 만 열 살 먹은 아들을 보고 있자면, 습관뿐 아니라 말의 결, 말의 온도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날 것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나의 가족들에게, 날 것이라도 다정함을 잃지 않고, 따뜻한 온도를 잃지 않게 말을 하는 기술은 무엇일까?


'말'은 입을 통해 나오지만 결국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느 이상 온도가 뚝 떨어져 버리지 않도록 마음의 온도와 결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나의 '말'의 숙제이자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해는 말(馬)의 해라고 한다.

말장난은 아니지만, 말(馬)의 해에 '말(言)'에 대해 조금 더 신경 써보는 건 어떨까.

누구부터가 아닌 나부터.


"삶은 축제다"

-희노가


단어가 불러오는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3화: 추운 건 싫지만, '겨울'은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