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나요
'안부'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따뜻한 기분이 든다. 안부를 물을 땐, 언제나 대상이 있다.
잘 지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몸과 마음은 안녕한지, 그런 인사를 건넬 대상.
이렇게 몇 줄을 쓰고 좋아하는 친구 두 명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드디어.
혹시 지금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면 미루지 않으면 좋겠다. 날 밝으면 하지 뭐, 내일 하지 뭐, 하다 보면 그 안부를 묻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고, 이내 잊어버리기도 하니까. 결국은 하지 않게 된다.
그럼 나중에 또 생각날 때 하면 되지. 하면 좋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안부를 물을 수 없는 때가 온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다.
나는 언니가 없어 서러운 막내딸로, 한창 중년인 오라버니들이 둘이나 있다. 회사 다니랴 처자식 챙기랴 바쁜 나이겠지만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하라는 잔소리를 하려고 오라버니들에게 안부를 묻곤 한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에게 늘 하시던 말씀은 "형제끼리 잘 지내야 한다. 나중에 각자 가정을 갖더라도 서로 자주 연락을 해야 형제간의 정이 오래간다." 였는데.
아부지, 저는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답니다.
집안의 큰 어른이셨지만 조카딸인 나에게 늘 안부를 먼저 물으셨던 큰아버지.
이제 내가 안부를 먼저 묻고 싶어도 세상에 안 계신다.
3년 전 암투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른은 아버지에게는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형이었고, 나에게는 유일한 큰 아빠였다. 온 가족이 슬픔에서 채 빠져나오지도 못했는데 같은 해에 아버지는 둘째 누님을 또 멀리 보냈다. 그리고 이어, 누이동생까지.
1년 동안 세 명의 형제자매를 하늘로 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길이 없었고, 한 배에서 난 형제들을 먼저 보내는 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슬픔이더라고 아버지가 조용히 이야기하시는 걸 듣고 눈물을 훔치는 수밖에 없었다.
큰아빠와 고모들 뿐인가,
이제 나에게 '진짜 어른'이었던 분들이 하나 둘 이 세상과 인연이 다해 안부를 물을 수 없는 곳으로 가신다.
그들을 영영 그리워하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안부를 물어야 한다.
캐나다를 다녀와서 결심한 것이 있다.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해질 땐, 그 사람이 그리워질 땐, 그날 당장 연락해 보는 것이다. 안부는 용건이 있어서, 말할 게 있어서 하는 것과 다르게 다정함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려면 안부를 묻는 과정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안부인사 한 번 한 적도 없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 본인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낸다거나 집안대소사로 연락을 하는 사람은 왠지 얄밉다. 그런 연락을 받으면 진심 어린 축하보다는 계산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그때만 연락한 사람의 속사정 역시 그러할 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잖아,라고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 말은 사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안부를 묻지 못한 사람들이, 뒤늦게 연락할 때의 겸연쩍음을 덜어내기 위해 만든 말이 아닐까?
'안부'는 생각보다 대단한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안부를 묻는 것이다. 꼭 전화가 아니어도, 꾹꾹 눌러쓴 편지가 아니라도, 맘만 먹으면 세계 어디에 있든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지금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면, 오늘은 그 이름에 '안부'를 전하기를.
그것도 물을 수 있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희노가
단어가 불러오는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시작', '감기', '겨울', '말'에 이어 당신의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