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사람, 기억의 하모니
아이가 달려온다.
이제는 휙 들어서 빙그르 돌려줄 수 없는 무게가 되었기에, 나는 선 채로 두 팔을 벌리고 기다렸다가 안아주곤 한다. 아이가 내 품에 폭 안기면서 잘 속삭이는 말이 있다.
"아, 엄마냄새. 너무 좋아."
아이가 말하는 엄마냄새는 뭘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엄마 냄새는 나무냄새도 나고, 책 냄새도 나. 어떨 땐 좀 고소한 냄새도 나고, 자고 일어나서 안을 땐 더 포근한 냄새가 나."
아, 그렇구나.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냄새들인가, 하면서 알듯 모를 듯하다가, 나도 나의 엄마를 안을 때 나는 냄새를 떠올렸다.
'맞아. 그거 있지. 엄마냄새. 마음이 포근하고 푸근해지는, 다정하고 살가운 그 냄새.'
그제야 아이가 말하는 '엄마냄새'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했다.
좋은 냄새를 뜻하는 '향기'라는 단어도 있지만, 왠지 '냄새'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날 것의 감각에 더 마음이 간다. 단어에 대한 취향일 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살면서 가장 '냄새'에 민감했던 시기가 있다면, 아이를 품었을 때의 입덧하던 기간이었을까.
입덧은 사람마다 많이 다르다던데 한창 입덧을 하던 때에는 냉장고만 열어도 음식 냄새에 구역질이 나오고, 평소 좋아하던 음식의 냄새가 세상 힘들게 느껴졌다. 음식뿐 아니라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의 체취에 숨이 턱 막혔던 그때엔 냄새에 너무 민감한 것도 복잡한 세상에서 살기는 어렵겠다 생각했었지.
비 냄새도 계절마다 다르고, 볕의 냄새도 날마다 다르고, 좋아하는 빵냄새도 그날 빵의 구움과 익음 정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냄새에는 늘 시간과 사람과 기억이 붙어 다녀서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누군가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면 냄새라는 감각은 매우 사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친구들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이 각기 다른 향수를 써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추억의 이름이 모두 달라서일 것이다.
어떤 과학저널에서는 사람은 1조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색보다도 소리보다도 '냄새'의 힘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이미 몇 년이 지난 COVID- 19 시절, 여전히 아직 쉬이 웃을 수 없는 그 시절의 일들을 떠올려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후유증 중에 후각을 잃어버리는 증상이 있었다.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이미 병에서 회복을 했어도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해 너무나 괴로웠다고 이야기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는 당시 코로나에 걸린 적은 있었지만 그런 후유증은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도 코로 느껴지지 않는 음식의 맛은 여전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음식의 식감만 느껴지는 그런 것일까?
새삼 코와 코가 맡을 수 있는 냄새들이 소중하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초록색 대문을 가지고 있는, 그 대문으로 들어가 통로를 조금 걸어 들어가면 마당이 있고 한 지붕밑에 세 가족들이 살고 있는 양옥집이었다. 초록색 대문부터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계단을 올라야 해서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지만, 학교가 끝나고 대문 앞에 서면 엄마가 집에서 빵을 굽거나 고구마 맛탕을 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맛있는 냄새에 입안에 침이 스르륵 고이고, 코를 킁킁대며 벨을 눌러 "엄마! 오늘은 맛탕이에요?"하고 물으며 뛰어들어가곤 했다. 그것이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제일 행복한 기억이다.
그때의 초록색대문을 떠올리면 아직도 뭔가를 굽는, 따뜻한 냄새가 나는 듯하다. 앗, 물론 마당에 들어설 땐 강아지들의 지독한 똥냄새가 나를 반긴 적도 있었지만. 귀엽고 영리하게 생겨서 날 보면 얼른 꼬리를 세차게 흔들던 녀석들. 우리가 키우던 개들은 다들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머나먼 그 세계에서, 목줄이 없이 자유로운 어딘가에 있겠지? 잘 있어야 해. 모두들. 복실아, 용구야, '냄새'라는 단어에서 너네들도 떠올릴 수 있어 행복해.
'냄새'로 많은 것을 기억하고 떠올리는 나는, 내가 쓰는 글에서는 무슨 냄새가 나는지가 궁금해진다.
아이가 말하는 나무냄새 종이냄새 섞인 엄마냄새도, 어릴 때 초록색 대문 앞에서 맡았던 고구마 맛탕 같은 냄새도 좋겠지. 아, 나는 빵순이니까 바게트빵이나 식빵의 냄새는 어떨까. 겉이 단단해서 부스러기는 많이 떨어져도 질리지 않는 바게트의 고소한 냄새, 늘 다른 재료들과 잘 어우러지는 식빵의 은은한 단냄새, 대단한 향기는 없지만 매일 맡아도 물리지 않고 질림이 없는 그런 냄새들.
글에서 느껴지는 냄새는,
결국 그 글을 쓴 사람의 향이라고 믿는다.
나는 포근한 '냄새'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은 어떤 '냄새'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나요?
-희노가
단어가 불러오는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나간 단어, 5화: '안부'를 물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