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본다.

오늘 당신의 달은,

by 희노가

예전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했을 당시에 '문데이(Moonday)'라는 것이 있어서, 그날은 요가를 쉬는 날이었다.

문데이는 한 달에 두 날이 있었는데 달이 가장 차오를 때(Full moon)와, 달이 새로 시작할 때(New moon)였다. 아쉬탕가 요가를 설명하는 책에 따르면 문데이는 달의 에너지가 극단일 때로, 사람의 몸 또한 영향을 받아 수련할 때 부상의 위험이 있거나 회복이 더디다고 한다. 그때는 단순히 몸을 쉬는 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문데이는 여자의 주기로 따지면 '대자연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달거리 같은 날이 아닐까 싶다.

이름도 '달'에서 따온 달거리, 여자의 몸은 정말 '달'을 닮았다. 옛날 사람들도 그래서 그렇게 말했겠지. 달의 주기와 여성의 주기가 실제로 비슷하니까.

보름달같이 만개한 날이 있는가 하면, 눈썹달처럼 가늘고 여린 날이 있다. 매일이 다르고 신비롭다.

그리고 그 신비로운 주기들은 매번 반복된다.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언젠가부터 밤에는 밖을 잘 나가지 않아 어둠 속에도 달은 빛나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어쩌다가 달을 밖에서 보는 날이면 무언가에 홀린 듯이 달을 보게 된다.

낮의 해는 내 눈과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렵지만 '달'은 내가 눈을 들어 보기만 한다면 똑바로 마주할 수가 있다. 매일 모습을 바꾸는 달의 빛은 결국 해가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과학시간에 배웠건만, 그 ‘달’의 신비함을 그저 과학적 지식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요하게 떠 있지만 늘 변화가 있는 달은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어쩌면 '달'은 고전적이면서도 영원한 '뮤즈'일지도 모른다.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이라는 곡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조용하게 흘러가게 되는데, 나중엔 눈물이 툭 한 방울 흐를 것 같은 구간이 있다.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작품에는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 [바다 위의 월출(Moonrise over the sea)]과 같이 '달'과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있다. 그 뒷모습은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왠지 고독하고 사색에 빠져있는 듯하다.

어디선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문장을 보았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달을 바라보며 생각을 쉬기도 하고, 생각을 계속하기도 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달을 보고 그림을 그렸고, 누군가는 선율을 만들어냈고, 달에 대한 시를 짓고 글을 썼다.


현대에 와서도 달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얼마 전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눈썹달'이 정말 아름답게 떠 있는 날이 있었다. 그날은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닌지 여기저기에 눈썹달을 찍어놓은 사진들이 올라왔다. 난 그 달을 보면서 뮤지션 이소라의 6집 [눈썹달]_2004을 떠올렸다. 수록곡의 제목에는 '달'이 없지만 앨범전체를 듣다 보면 얇게 기울어져 아름답지만 서글픈 눈썹달이 내내 떠 있는 느낌이 든다.


보름달을 볼 때면, 어렸을 땐 소원을 빌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달을 보고도 더 이상 소원을 빌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저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읽은 후로는 보름달을 볼 때마다 이 책이 생각나 마음이 먹먹해진다.

암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난 예술가는 이 책에서 인생의 유한함,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하여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저자는 책에서 큰 티는 내지 않지만 음악작업을 하는 중간중간에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책 끝에는 저자를 대신한 에필로그를 사카모토 류이치의 인터뷰 취재를 담당한 사람이 썼는데, 이 책의 이름이 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가 되었는지가 나온다. 그것은 사카모토 씨가 음악을 맡은 1990년의 영화 <마지막 사랑>의 마지막에 등장한 원작자 폴 볼스가 내레이션처럼 읊조리던 말의 일부였다.

동명소설의 이 부분을 나도 잠시 가져와 본다.

세상 모든 일은 무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극히 적은 횟수밖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어린 시절의 그 오후를, 앞으로 몇 번 떠올릴까? 그것이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곳에서, 지금의 자신의 일부가 된 그 오후마저. 아마 앞으로 네 번, 혹은 다섯 번일 것이다. 아니, 더 적을지도 모른다. 보름달이 뜨는 것을 보는 일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아마 스무 번이려나. 그리고, 그럼에도, 무한한 횟수가 있다는 듯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위에 말한 드뷔시의 [달빛]과 이소라의 [눈썹달] 앨범, 그리고 자신이 보름달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생각했던 사카모토 류이치가 본인 장례식을 위해 남긴 Play list 곡들을 연달아 들었다.

그들이 느꼈던 '달'을 같이 느끼고 싶어서.


내 휴대폰에는 사실 달의 모양을 관찰하는 앱(The Moon)이 오래전부터 깔려있다. 밖에 나가서 달을 매일 관찰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몸이 무겁게 찰랑댈 때면 달앱을 열어본다. 신기하게도 그런 날은 정말로 보름달인 적이 많다. 보름달이 뜨면 변신하는 늑대인간도 아닌데 이상하지, 달의 주기와 몸의 컨디션이 겹치는 날이 많으니.


아무래도 나는, 해가 해사하게 비추는 날을 좋아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달을 기다리고 있나 보다.

보름달이 뜨는 까맣고 환한 날을, 눈썹달이 서늘하게 아름답게 뜨는 날을.

이 글이 발행될 날을 찾아보니 보름달에 거의 가까워지며 차오르고 있는 달, Waxing Gibbous이다.


오늘 당신의 '달'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삶은 축제다"

-희노가



단어가 불러오는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나간 단어, 6화: 포근한 그 '냄새'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