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감을 수 있다면

물리학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by 희노가

캐나다 런던시티에서 머무를 때, 한국보다 14시간 느린 시간대를 몇 개월동안 경험해 본 것은 여행으로 잠깐 다른 나라에 간 것과는 조금 달랐다. 몸의 시간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었지만,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연락할 때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시간(한국시간이 기준이다)은 한국 시간에 맞춰야 했으니 마음은 두 세계의 시간을 계속 의식하며 살았다.


친구네 집에서 새해를 맞을 때는 무려 16시간이나 차이가 나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새해인사가 거의 끝날 때 즈음에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시차'라는 두 글자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그 차이를 몸으로 살다 보니 아무래도 신기했다. 캐나다에서 부모님과 통화를 하는 시간은 아이와 저녁을 먹을 때쯤으로, 그 시간에 부모님은 아침식사를 하시며 통화를 했다. 그래서 전화를 끊을 때 마지막 인사는 늘 엇갈렸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늘 '잘 자라'라고 하셨고, 우리는 부모님께 '하루 잘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생하게 통화를 하면서도 각자 멀리 떨어져 다른 시간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으면서도 약간 슬펐다.


나는 물리학에는 영 아는 것이 없지만, 물리학에서 보는 '시간'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 준 작가의 책은 아주 흥미로웠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는 게 아니며, 유일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가령 산 위에 사는 사람과 평지에 사는 사람의 시간이 아주 미세하지만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 또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는 것,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고,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다는 것이다(이걸 한 세기 전에 아인슈타인이 알아냈다는 것도). 쉽게 설명했다고는 하지만 뒤로 갈수록 어려워서 그리 길지도 않은 책을 다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다 읽고 나서는 결국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한 문장만 남아서 난처했다. 그 문장이 핵심이긴 하지만 누구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이 정도밖에는 말하지 못하겠으니 그만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 덕분에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우주에서 과거의 자신과 딸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도 온전하게 이해했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흐르지 않는다 해도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나 과거나 미래로 가고 싶은 탐구의 마음은 옛날부터 유효했던 것이 분명하다. 타임머신으로 과거와 미래를 여행한다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힘을 가진다거나 하는 건 수많은 영화나 책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니까 말이다.


혹시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의 주인공처럼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시간들-좋았던 순간들 뿐 아니라, 고통스럽거나 힘들었던 시간들까지- 이 모두 필요했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진로를 결정지은 시간들 중에 크게 바꾸고 싶은 것은 없다. 다만, 다시 돌아가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실수하기 전에 말해주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어떤 남자아이와 짝꿍이 되었는데 그 아이의 코끝이 좀 뭉뚝했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코를 보면 손끝으로 내 코를 살짝 납작하게 만들어 보이곤 했다. 이건 명백하게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아주 나쁜 행위였다. 그 친구는 당연히 기분 나쁘고 상처받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 친구가 날 때리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다. 결국 그 남자아이는 담임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했고, 나는 선생님한테 '친구 놀리는 거 아니다'라고 주의를 받은 뒤 그 아이에게 사과했다. 그 후로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랑 스스럼없이 지냈던 것도 아니었다. 어렸다고는 해도, 지금 생각하면 대체 왜 그랬지 하고 정말 후회되는 행동이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와 짝꿍이 될 무렵으로 돌아가 내 손끝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단단히 훈육을 시켜주고 싶다.


하나 더 있다. 이번에는 어른이 된 뒤 일이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비교적 탄탄했던 화장품회사에 들어가 일본담당으로 일하게 되었다. 몇 년 후 내 후임을 뽑아야 했고, 일본어가 기본조건이어서 1차 면접은 내가 맡았다. 그녀보다 일본어를 더 잘하는 지원자들이 많았으나 간절함과 성실함이 느껴져 그녀를 뽑았다. 일을 가르쳐주며 큰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출장 갔다 온 사이 그녀가 일본업체와 이메일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수습할 생각에 앞이 깜깜해졌고, 나 역시 윗선에 혼날 일이 분명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돌아와서 그녀를 불러다가 호되게 야단을 쳤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팀 전체가 있는 사무실에서 그랬다는 점이다.


나는 왜 그녀를 회의실로 데려가지 않았을까. 아무리 잘못해도 그래서는 안 됐는데. 물론 비슷한 기수의 후배들에게 경각심을 가지게 하려고 그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꼭 그런 방식이어야 했을까. 직장생활이 처음이었던 그녀는 사수의 호통에 울었고, 나는 눈물을 닦고 들어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몇 년 위의 사수일 뿐인 내가 뭐라고 그렇게 심하게 혼을 냈나 싶다. 아마 다시 돌아가도 화를 내긴 했을 것 같지만 돌아간다면 그때 흥분했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얼른 그녀를 데리고 회의실로 가!'라고.


그 후에도 한동안 그녀가 업체에 보내는 이메일이 못 미더워서 하나하나 확인하기도 했다. 혼만 낸 것은 아니고 밥도 사주고 나름대로 잘 가르쳐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그걸로 그녀의 상처는 치유가 되었을까.

나중에 내가 회사를 떠날 때, '00님 없으면 저 이제 어떻게 해요'하면서 울던 그녀였지만, 결국 얼마 못 버티고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녀를 나약하게 만든 게 아닐까, 믿어주지 못했던 게 아닐까. 마음이 몇 년 동안 내내 안 좋았다. 이것도 오래전 일이지만 그녀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티팟을 아직 가지고 있다. 찬장을 열다 그 티팟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해요. 00 씨. 그리고 친구야, 정말 미안해.


이 두 가지 모두 내가 타인에게 큰 상처를 준 시간들이다. 아무리 해도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일을 잊었길 바라지만 나는 잊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반면교사 삼아서 '지금의 시간을 잘 살자'라는 말은 어쩌면 흔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주 망각하고, 같은 실수도 곧잘 반복한다. 지금의 시간에 집중해서 현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한 반성과 더불어 시간을 내어 잘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잠시 멈춰서, 혹은 느리게 걸으면서.


물리학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장소와 속도에 따라 다르게 흘러간다고 한다.

당연히 되감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나온 시간을 가끔 뒤돌아볼 여유만큼은 남겨두고 싶다.

그렇게 조금 느리게, 아니 살짝 느리게.


"삶은 축제다"

-희노가


단어가 불러오는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나간 단어들:

시작, 감기, 겨울, 말, 안부, 냄새, 달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