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되는 마음과 겨울나기
먼 겨울왕국(캐나다)에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도 역시 겨울왕국이다.
아, 우리나라 겨울도 이렇게 찬바람이 살을 파고들었다는 걸 새삼 실감한다.
어렸을 때부터 손발이 유난히 차가웠던 나는 '추운 것'과 '추운 겨울'이 싫었다.
한기 어린 외풍이 밤을 채우는 오래된 주택에서 살았을 때,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코가 아주 차가워져 있었고 가끔은 실내지만 입에서 입김이 나오기도 했다.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거실에 엄마가 깔아놓은 담요 속으로 손발을 넣으면 다정하던 엄마가 "왜 이렇게 발이 차가워. 얼음장 같아"하면서 몸서리치는 모습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얼굴을 찌푸리며 걱정하는 엄마의 얼굴은 왠지 좋았지만 혹시 손발이 찬 내가 싫은 건가 하고.
학창 시절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교복치마에 검정스타킹, 도로시구두로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발이 시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발가락이 어는 듯한 그 느낌이 통증처럼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추운 겨울만 되면 '왜 인간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 거냐'며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곰처럼 따뜻한 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옷을 입지 않으면 바깥활동을 할 수도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이 혹독한 겨울을 겨울잠 없이 보낸다는 게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겨울잠'대신 '겨울방학'이라는 장치가 있었지만 딱히 기억나는 활동은 없었다. 눈이 많이 왔을 때 오빠들과 마당에서 눈싸움을 하다 오빠들의 공격에 펑펑 울었던 기억은 있지만 말이다.
그런 겨울에 대한 몸서리침이 작은 설렘으로 바뀐 지는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곳은 온타리오주에서도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그리고 11월부터 눈이 왔고,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아이 학교가 문을 닫았다. 아이와 나는 집에서 고립 아닌 고립을 경험했다.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보며 이제까지 모르던 겨울의 위대함을 창밖으로 보았다.
밤마다 차가운 눈이 반짝반짝하게 뒷마당에 수북하게 쌓이는 모습은 디즈니영화 <겨울왕국, Frozen>을 떠올리게 했는데 새까만 밤이 눈으로 환하게 밝혀지는 모습이 생경하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눈이 그치고 나면 동네에 있던 공원이 온통 눈밭으로 변신해서 썰매장이 되어 있었고, 눈 속에서 자유롭게 뒹구는 아이의 모습에 시리지만 빛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아아. 추운 건 여전했지만.
바깥활동을 아무래도 삼가게 되는 겨울이야말로 집안에 콕 박혀 내 안에 소복이 쌓여있는 어떤 것들과 집안 정리를 할 수 있는 계절임을 어렴풋이 받아들였을 때. 나는 <윈터링:겨울나기>라는 책 이름처럼 겨울잠을 잘 것이 아니라 '겨울나기'를 해야 한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시작'편에서도 말했듯, 겨울은 외부와의 '단절'을 쉽게 만들어 주는 계절임으로, 겨울에 무언가가 시작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겨울은 때론 혹독하다. 삶의 힘든 시기를 흔히들 '겨울'이라고 표현하듯이 겨울은 나기가 쉽지는 않은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앞서 말한 <윈터링> 책에는 8월부터 월동준비를 한다는 핀란드 사람들, 11월부터 1월 사이에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하는 노르웨이 트롬쇠 지역 사람들을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나 길고 어두운 겨울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런 거친 겨울을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묘한 위로를 받았다.
내 인생을 계절로 비유한다면, 지금 나의 계절도 '겨울'일까?
오래도록 해왔던 요가강사라는 직업을 내려두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지금, 캐나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전히 마음이 조금 떠 있는 지금, 글을 계속 쓰기로 한 것만 다짐한 채 한 치 앞이 불투명한 지금.
겨울은 우리 모두가 아는 선택의 기로이자, 허물을 벗어야 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얼마나 혹독한 겨울날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추운 건 여전히 싫지만, 나는 이 겨울을 받아들이고 날 것이다.
이제야 '겨울'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으니.
-희노가
단어가 불러오는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1화: '시작'
*2화: '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