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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흰둥 Jan 18. 2019

#prologue. 나와 결혼해줄래?

2018년 10월 어느 멋진 날 담백한 그의 프러포즈를 받았다.


보통 남자 친구의 프러포즈를 사전에 눈치 챈다던데... 나는 눈치를 단 0.1%도 채지 못했다.


야경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춰 그저 맛있는 기념일 밥을 먹는 줄로만 알았던 그 날은 내 인생에 길이길이 기억될 한 장면으로 남았다.


"나도 작고 반짝이는 걸 받았다"



사실, 그가 내게 건넨 그래피티 그림 속 "Will you marry me"라는 단어를 눈앞에서 발견했을 때 정말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들 프러포즈도 잘 받고, 결혼도 잘하는 거 같은데 왜 나에게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는 걸까. 왜 나의 연애는 늘 달콤하게 왔다가 쓰리게 끝나는 건지. 특히 스물아홉 끝자락에는 마치 이대로 서른이 되면 영원히 싱글로 사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칭 타칭 "열렬한 사랑 운명론자"로서 아직 나의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으며 쿨한 척 스스로를 위로를 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른은 그냥 숫자 서른이다. 엄청난 인생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십대가 끝난다고 나의 청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서른에도 멋진 남자는 나타나고, 더 나은 미래가 존재한다.


그리고 10월 어느 멋진 날, 이러한 나의 운명론을 더욱 찬양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역시 그는 내 운명이야"


내 나이 서른에 만난 그는 자신의 그림 솜씨를 한껏 발휘한 그래피티 작품으로 청혼 메시지를 전했고, 반짝이고 눈부신 반지를 수줍게 내밀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거대한 프러포즈는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가득 채워진 담백한 프러포즈였다.


프러포즈를 받으면 누군가는 눈물샘이 폭발하고, 누군가는 고민의 늪에 빠진다고 그랬지만 다행히도 나는 너무나 놀란 마음에 눈물이 핑 맺힐 뿐, 샘이 솟지는 않았다. "뭐야... 언제 준비했어" 이 한마디로 상황 정리 끝. 오글거리는 걸 싫어하는 탓에 벅찬 마음이 겉으로 표출될까 애써 덤덤한 척했던 거 같다. 물론, 씰룩거리는 입꼬리는 숨길 수 없었지만.......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내가 그의 프러포즈 계획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메인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오기 전(프러포즈 준비시간) 자리를 비워 줌으로써 그의 성공적인 프러포즈를 의도치 않게 도왔고, 파우더룸에서 혼자 셀카 삼매경에 빠져 늦게 돌아오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친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 나의 싱글 졸업기와 "예비 신부" 입성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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