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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Jul 16. 2024

소리 없는 꿈

가장 먼저 잊혀지는 건 목소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꿈에도 소리가 없었다. 헤어져간 사람들이 자주 나타난 내 꿈속은 말을 잃은 사람들의 나라 같았다. 무성의 꿈을 꿔도 느껴지는 감정은 절절해서 울며 깨기가 여러 번이었다. 소리 없이 울거나 화내는 사람 꿈을 꾸면 그가 내 삶에 있었던 사람인지 까마득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도 잊지 않는 목소리는 가족의 것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꿈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 가족을 향한 상처가 아물지 않아 연락을 끊고 이사를 가버렸을 때도 다른 사람만 잔뜩 나왔다. 그럼에도 명랑하지만 날 선 엄마 목소리, 언제나 불만을 토로하듯 중얼거리는 아빠 목소리, 억눌린 울분 틈을 비집고 나오는 새된 언니 목소리는 어제 들은 것처럼 선연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잠적해버린 지 삼 개월이 넘었을 즈음, 택배인 줄 알고 연 현관문을 밀고 부모님이 들어왔다. 애타게 우는 엄마 앞에서 실없이 웃어버렸다. 어쩌면 나를 찾아내기를 염원했는지도 몰랐다. 그 정도 사랑은 받고 있다고 어렴풋이 믿고 있었는지도. 상사의 성희롱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됐을 때 가족들은 나를 비난했다. 그때 나는 어느 때보다 상처받았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과 다름없는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부모님은 원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 상처를 차분하게 꺼내 보였다. 억누르고 억누르다가 폭발적으로 분출해서는 내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후였다. 내 말을 듣고 부모님은 수긍했다.


언니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이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언니와 나는 부모님을 통해서만 서로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보낸 장문의 이메일을 계기로 종로 익선동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문득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신 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오롯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니까. 더운 공기가 매섭게 느껴지는 여름, 차가운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시는 가족들에게 이해와 사랑을 기대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속수무책이었다. 가족 밖에서 숱한 연애와 관계 실패를 경험하며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랑이 가족 안에 있다는 걸 알았다.


오 년의 서울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차에 올랐다. 차창에 붙어 선 내 모습이 비쳤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가족에게서 도망쳐 상경했지만 빈 손으로 돌아가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상처받아 피 흘리며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도망칠 것이다. 언니는 가까이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부모님도 내 이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나를 환대했다. 지난 오 년은 나에게 소중한 걸 깨닫기 위한 시간이었다. 이번 귀향은 내가 다시 가족들을 사랑하게 됐다는 뜻. 서로를 상처 입혔던 시간을 감싸 안고 다시 빠진 사랑은 처음보다 진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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