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상 밖으로 이끄는 나의 작은 동반자에게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집순이'다.
꼭 필요한 약속이 아니면
굳이 밖으로 나서는 걸 즐기지 않는다.
나에게 집은 가장 안락한 휴식처이자,
가장 완벽한 요새다.
최근에는 일마저 집에서 하게 되었다.
프리랜서의 삶이란,
어쩌면 나 같은 집순이에게 주어진
최고의 환경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의무적으로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완벽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집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창문으로만 확인하는 날들이 쌓이자
마음이 점차 곪아갔다.
모니터 불빛에 시야가 잠식되고,
계절의 변화는 달력으로만 겨우 가늠했다.
홀로 일에 매몰되다 보면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는 기분.
집이라는 완벽한 요새는
어느새 나를 가두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내 일상에 반려견 '레이'가 들어왔다.
반려견 레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내게는 아주 중요하고도 귀찮은 의무가 하나 생겼다.
바로 '하루 한 번의 산책'이다.
일을 하다 보면
몰입의 흐름을 깨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혹은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
현관문 밖으로 한 발자국 떼는 것조차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산책이 나에게 약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이는 타협이 없다.
녀석은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나가고 싶어 하거나
꼬리를 흔들며 나갈 시간임을 온몸으로 나에게 알려준다.
그 맑은 눈을 외면할 재간이 없어,
나는 마지못해 옷을 챙겨 입고 목줄을 든다.
신기하게도,
현관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다.
차가운 공기가 뺨에 닿으며 정신이 번쩍 든다.
방 안에서 나를 짓누르던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불안감은
맑은 공기와 함께 흩어진다.
모니터만 보던 뻑뻑한 눈에
비로소 계절의 색이 담긴다.
붉게 물든 단풍,
노랗게 익어가는 잎사귀,
코끝을 스치는 꽃향기.
한 걸음, 한 걸음.
레이의 보폭에 맞춰 흙을 밟다 보면,
온 세상이 다시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두 발로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벅찬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산책은 정체되어 있던
내 생각과 감정을 다시 흐르게 하는 작은 의식이다.
나는 레이를 위해 산책을 나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매일 나를 밖으로 끌어내 주는 건
레이일지도 모른다.
가장 안락한 나의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나태와 무기력에 잠식되지 않도록.
하루 한 번,
멈춰 있던 나를 다시 걷게 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게 해주는
나의 작은 동반자.
오늘도 너 덕분에
나는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