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주도권을 놓치려는 순간
전에 결혼식을 앞두고 팀 동료들과 신혼여행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여행 루트와 방문 예정 지역을 기분 좋게 설명하고 있었는데,
상사는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기 생각을 정답처럼 내리꽂았다.
“패키지여행 아니면 다 고생이야.”
“이동하다가 시간 다 보내겠네.”
마치 경험해보지도 않은 일을
너무 잘 안다는 듯 말하면서도,
그 말투 안에는 자신이 못 누린 것들에 대한
미묘한 방어가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냥 넘겼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 하고.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와 복귀한 뒤에도
비슷한 평가와 단정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내 경험의 주도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걸
은근히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참아왔던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말투는 단단해지고, 표정도 굳었다.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은
상대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그동안 쌓였던 내 감정을 향한 분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게 대응하고 나서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고,
내가 너무 하수처럼 느껴져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
왜 그런 말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왜 참다 터져버렸는지,
왜 감정적으로 반응했는데도 시원하지 않았는지.
남편의 대답은 의외로 아주 담백했다.
“저는 괜찮던데요? 저는 좋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말하면 돼.”
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
감정적으로 맞서기보다
내 기준을 조용히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단단한 방식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무례한 사람 앞에서
굳이 싸울 필요도 없다.
상대의 기준을 설득하려 애쓰지도 않아도 된다.
그저,
“저는 좋더라고요.”
하고 내 의견을 말하면 된다.
내가 좋다는데
상대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내 경험은 내가 겪은 것이고,
그 안의 기쁨과 의미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지키는 데 충분했다.
상대의 취향은 그 사람의 것이고,
내 경험은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 내 선택을 평가하려 하거나
내 기준을 흔들려고 해도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저는 좋았어요.”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담백한 한 문장이
오히려 가장 단단한 경계가 되어
내 감정을 지켜준다.
무례한 사람을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앞에서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은 있다.
감정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을 담백하게 내놓는 것.
내 경험은 내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