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결국 상대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쪽으로 작용한다.
회사에서 나에게 유난히 쌀쌀맞게 대하는 차장님이 있었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마주칠 때마다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말투는 건조하고, 표정은 단단하게 굳어있고,
대답조차 필요한 만큼만 하는 사람.
마주치기 싫어서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까칠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 사람의 태도 뒤에 숨은 감정을
모두 내 잘못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기분을 상하게 했나?’
‘아까 한 말이 문제였나?’
업무 중에도 끝없이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난번 그렇게 나르시시스트에게 당하고도 나는 또 같은 상황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인지하고 보니, 나는 그 감정에 굳이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연민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감정 관리 방식이다.”
그 말을 이해하게 된 건
그 차장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을 때였다.
“저 사람 오늘 많이 힘든가 보네”
“이렇게 직장 동료에게 티가 날 정도로 삶이 고된가 보네.”
이렇게 바라보는 순간
미워할 이유가 줄어들었고
사건의 크기도 자연스럽게 작아졌다.
미움은 큰 에너지를 쓰지만
연민은 감정적 거리를 만든다.
그래서 작은 일이 되고,
나는 덜 흔들리고, 덜 지친다.
결국 감정은 상대에게 두고,
나는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note
쇼펜하우어는
“연민은 인간을 덜 소모시키는 가장 고귀한 태도”라고 말했다.
감정적인 사람을 대할 때
거리를 두되,
미움 대신 연민을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