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피몬이랑 바꿀래?

만약 그때 바꿨다면

by 너굴

초등학교 1학년,

그러니까 여덟 살 때의 일이다.


형을 따라 교회에 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교회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도 한 손에는 늘 그렇듯

너구리를 꼭 쥐고 있었다.


교회 버스는 중형 밴이었다.

좌석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라

앞 좌석에 앉은 또래와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또래는 파피몬을 안고 있었다.


디지몬어드벤처 파피몬. 이베이 갈무리.


너구리와 파피몬은 서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소년은 내가 안고 있는 너구리를 보며 말을 걸었다.


"그 인형 뭐야?"

"너구리."

"귀엽다. 이름이 뭐야?"

"너구리."


소년은 너구리를 유심히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듯했다.


"내 파피몬도 귀여워. 나랑 인형 바꿀래?"

아니.


내 세상의 한 파편인 너구리를 잃기 싫어

단칼에 거절했다.


또래는 여러 번 바꾸자고 꼬셨지만,

나는 끝까지 너구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너구리. 2021년 5월 12일 촬영.

지금도 내 곁에 있는 너구리를 보면

집에 무사히 데려왔나 보다.


만약 너구리를 파피몬과 바꿨다면 어떻게 됐을까.

평생 후회하지 않았을까.

이름도, 얼굴도, 학교도 모르는 그 아이를

다시는 만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 뒤로 교회에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피몬과 바꾸지 않은 결정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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