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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e Kim Jul 17. 2022

낯선 것을 사랑하기는 쉽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올 때

나도 그랬다.

나고 자란 한국땅을 떠나 독일에 거주하게 됐을 때, 그것 자체로 내가 마법처럼 특별해진 기분이었다.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단어들로 가득 찬 거리를 걷는 것이,

하얀 헬멧을 쓰고 서투르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학교를 가던 길이,

동네 슈퍼에서 일주일치 식재료를 장바구니에 싣고 끙끙 오르던 집의 계단이,

서류 하나를 받자고 몇 번 씩이나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아야 했던 행정 업무가,

소소하고 지나치게 아날로그여서 자칫 불편할 수 있었던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일상이라 행복했고 소중했다.

사실 이런 특별한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을 독특한 감성이 내게 생겼다는 우쭐한 마음도 가졌었다.


당분간 내게 하늘길이 닫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막막해지자, 아무 잘못 없던 주변의 일상이 미워 보였다.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에 찌든 한국에서 앞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한국에서 낭만은 그저 돈을 줘야 살 수 있는 비싼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독일에는 오직 그곳에서만 향유할 수 있는 낭만과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흐린 하늘 속 구름 한조각

사실 타지 생활로 인해 생겨난 외로운 구멍은 틀림없이 존재했다.

내 피부에 익숙한 공기와 언어, 내 곁을 늘 지켜주던 가족들과 친구들.

나를 이루고 있던 크나큰 부분과 떨어져 생활한다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과 하염없는 그리움을 가져다줬다.

그 큰 구멍을 끊임없이 타지의 낯섦에서 오는 특별함으로 덮어두고 포장하곤 했다.


독일에서한없이 힘들고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운 날들도 돌아보면 분명히 있었다. 아니,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지만 그 외로운 구멍 때문에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여기서 일궈낸 특별함은 공기처럼 사라질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좋은 조각도, 좋지 않은 조각도 손에 꼭 쥐고 있고픈 욕심이었을까.

손에 쥔 이것을 놓으면 평범하고 지긋지긋한 예전의 나로 돌아가버릴까 봐 두려웠던 어리석음이었을까.

올해의 마지막 슈파겔

올해 초여름, 몸과 마음의 짐을 정리하러 다시 떠난 독일에서 내 일상을 다시 조우했을 때,

그것이  이상 현재아니라 과거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일에 처음 올 때 보았던 거리의 사인들과 간판들, 넓고 맑은 하늘과 구름들은 여전히 정겹고 아름다웠지만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 또한 나의 일상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새로움과 낯섦에서 오는 그 특별함에 취해 있었던걸 지도 모른다.


2주가 채 안 되는 짧고도 긴 여정 동안 나는 많이 힘들어했다.

또 힘들어한 만큼 그 상황을 이겨내는 힘을 얻었다.

귀국을 며칠 앞둔 저녁에는 문득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여행에 동행한 가족들과 어려운 조모임 해내면서 각자 한층 성장해낸 기분이었다.

모두가 마음에 평화 한 조각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던 독일의 조각들을 다시 한번 톺아보며 가족들과 공유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이제 언제 다시 독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내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나를 이끌었던 것들이 바로 독일에서의 시간과 사건, 그리고 사람들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감사하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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