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의 대상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려오자
어느 순간부터 ‘너’에게 향하는 글을 쓰곤 했다.
너는 대체 누구일까.
나의 내적 대화는 누구를 향하는 것이었을까.
예전에 저장해 둔 글조각이 생각난다.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에서 찾은 글이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2인칭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당신’ ‘그대’라고 호명할 때, 2인칭은 언제나 지금 현전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내’가 부를 때, ‘당신’은 내 눈앞에 있어야만 한다.
혹은 ‘내’ 목소리를 당신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2인칭은 1인칭이 만들어낸 간절한 대상이다."
문제는,
내가 만들어낸 간절한 대상이 누구인지 종종 헷갈린다는 것이다.
나의 사담은 대체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실은 잘 모를 때가 있다.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마음도 똑같다.
다양한 존재들이 뒤섞여 마음을 흔들곤 한다.
내적 대화의 대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싶다.
내가 만들어낸 ‘너’는 혹여나 허상은 아닐까.
실은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이상향을 만들어놓고 답 없는 대화를 거는 것은 아닐까.
그럴수록 스스로와 더욱 긴밀하게 대화를 나눠야 한다.
타인을 향하는 내적 대화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나 자신을 외롭게 만들 뿐이다.
집중의 대상을 외부에서 내부로 가져오자.
나와 접촉하며 가까워지자.
단단해지고 싶다.
지금보다 더 의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