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으네와 가평 쪽으로 놀러 가기로 한 건 다분히 우리-나와 으네- 때문이다. 멀리 사는 관계로 함께 1 박하지 않는 한 두 커플 모두 한 명은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런 고로 다 함께 느긋히 한 잔 하는 저녁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항상 다음에, 다음에만 남발하다가 드디어 저질렀다. 가평 연인산 온천 리조트라는 곳으로 으네가 콜을 했고, 나는 되지도 않는 일정을 억지로 억지로 껴맞춰서 함께, 같은 숙소를, 드디어 예약한 것이다.
이런 모임에서는 자연스레 남편보다 내가 주도를 하게 된다. 숙소 예약에서부터 구워 먹을 메뉴 선정과 각 가족이 분담해야 할 것들까지 나와 으네가 정했고, 남편은 그 어느 때보다 수동적이자 피동적으로 응했다. 일이 요새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도 반응이 뜻뜨미지근하니 이거 원, 괜히 나 혼자 설레발치는 모양새라 조금은 기분도 상했다. 그렇지만 군말 않고 따라와 주는 게 어디랴 싶어서 빈정상한 척도 하지 않고 신나서 뭘 구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까 하고 궁리를 했다. 역시 놀러 가서는 숯불에 구워 먹어야 제 맛이지. 으네는 고기류를 준비해오기로 했고, 나는 해산물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으음? 그러고 보니 고기는 그냥 소고기나 돼지고기면 되는데 해산물은 스케일이 광범위했다. 장어에서부터 시작해서 새우, 가리비, 맛조개, 바지락 등 뭘 사야 할지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했다.
문제는 전날 저녁에 또 생겼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해산물이 영 신통치 않았다. 장어는 맛이 없어 보이고 조개는 홍합과 바지락이 전부였으며 새우는 냉동을 해동하여 낱개 포장한 게 전부. 이것도 오래되었는지 10% 할인하여 판매 중이었다. 많은 종류를 사서 골고루 맛있게 구워 먹고 싶은 계획에 또 한 김새는 순간, 남편이 말했다.
"내일 수산시장 들러서 싱싱한 생물로 사가자~!"
오옷,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 역시 먹는 것 앞에서는 모두들 적극적이 된다.
다음 날 수산시장에 들렀을 땐 더 신이 났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랍스터와 제철을 맞은 꽃게, 수조 위로 기어 나오려고 하는 대게와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새우,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왕가리비와 막 잡아온 듯한 전어가 수조에서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하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줘야 여행 가는 맛, 구워 먹는 기대감이 살아나지 않겠느냔 말이다. 남편도 오랜만에 들른 수산시장의 생기에 전염되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주문하며 모처럼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얀이야 뭐, 말할 것도 없이 신났다. 남편은, 이것저것 사서 주차해둔 곳에 돌아갔는 데에도 팔딱거리던 전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지 다시 가 싱싱한 전어까지 구매해왔다.
"가을엔 역시 전어지~! 전어구이 해 먹자!"
역시 동행자의 즐거움은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리조트에 도착해서 각자 준비한 음식을 꺼내 먹을 준비를 했다. 해산물은 준비하는데 손이 많이 가지만, 횟집 아들내미 경력이 있는 남편만 있으면 그 어떤 두려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다. 남편은 전어 배를 뚝딱 따고, 키조개 손질도 하고, 백합을 잘 닦아 백합탕 준비를 했다. 나랑 얀이는 베이컨과 새송이버섯을 잘라 꼬치에 구워 베이컨 새송이 구이 준비를 하고 번들로 사 온 1.5리터짜리 와인과 소주, 청하, 맥주 등을 세팅했다. 으네 남편은 등심을 맛있게 구워 먹기 위해 휴대용 버너와 프라이팬을 준비해 버터랑 고기를 열심히 구웠다. 그 와중에 으네는 홀로 우아하게 앉아 사뭇 심심하다는 표정까지 지으며 와인을 홀짝였다.
"너 너무 혼자 우아해 보여."
"그러게. 나 혼자 너무 먹기만 하네."
아이 있는 커플과 없는 커플의 자태가 선명하게 비교되는 순간. 나는 아기 코알라를 등짝에 붙여놓고 먹을 것을 열심히 얀이 입에 날아가며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게 먹는 반면, 으네는 모든 음식을 여유롭게 먹으며 주변 풍경까지 한번 둘러보고는, 두 남자가 구워 나르는 음식을 음미했다.
당장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분은 확실히 즐겁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아이 낳고서도 함께 여행 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그렇게 열심히 마시고 수다를 떠니 다음날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어쩐지 즐거워졌다.
그래서 내 기억에 가평 연인산 리조트의 이미지는 그냥, 맛있는 저녁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나를 위한 여행도 이렇게 가끔은 필요하지 않겠느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