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나의 시간에 대한 단상

by 전고운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술을 좋아하는 마음과 술을 적당히 마셔야 내일 뒤탈이 없다는 갈등은 언제나 존재한다. 엊그제도 술을 너무 마셔서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후 당분간 술을 또 이렇게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거기서 헤어나오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쓰여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죽다 살아난다고 하는데, 정말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죽다 살아나는 기분이다. 또 에너지가 바닥일 때는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아서 삶에 내가 더이상 할 일이 없을때 나는 과연 무엇을 하며 남은 인생을 보낼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분명 젊은 시절의 나는 이러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무언가가 되고 싶은데 될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가 괴로워서 술을 마시고 괴로워하고 남은 인생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것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결혼과 출산과 육아는 내게 미션을 주었다. 남은 인생 어떻게 시간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하도록 엄청난 장기간의 숙제가 안겨진 것이니 그저 열심히 사는 수 밖에. 대출을 받고 월급을 벌고 아이를 키우고 좋든 싫든 회사를 나가다보면 시간이 후딱후딱 지나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퇴직 후 할일이 없다는 사람들의 서글픈 이야기와, 인생 충분히 즐기며 살면서도 짧은 인생에 대한 아쉬움 가득한 60대 이상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인생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다시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 힘들었던 세월 다시 살아내기 싫단다. 나도 어느정도는 그렇다. 힘들었던 20대 30대를 다시 살아내라면 살긴 하겠지만 그 불안의 시기를 또 겪으라고? 나는 지금의 안정감이 더 중요하다. 요즘은 뭔가 거창한 소망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마음이 어떠한 외란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온할수 있는 호연지기를 좀 더 키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의 나는 아이가 하루하루 커나가는 기쁨이 굉장히 크므로 먼 미래에 대해 크게 생각할 오랜 시간이 주어지지 않지만, 아이가 점점 내 손과 시간이 필요없어지는 걸 느낄 때에는 '혼자 시간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 다시 많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럼에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아서 좀 더 생산적으로 살고 싶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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