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 글을 참 깔끔하게 써."
서점에서 [언어의 온도]를 집어들어 읽고 있는데, 옆에 지나가던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으음... 그런가...?
그 깔끔하게 썼다는 글을 읽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이 책의 깔끔함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여자는 이 사람의 문체 어느 부분에서 깔끔함을 느꼈던 것일까.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의 문체를 깔끔하다는 말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등등.
글에 대한 평가는 둘째 치더라도, 에세이 부분에서 꽤나 오래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봤을때 [언어의 온도] 작가 이기주는 상당히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듯 하다. 나만 하더라도 몇 주 전에 한번 스쳐지나가듯 읽고 놓았던 책을 다시 생각나서 굳이 또 한 번 훑어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 여자의 말이 마법의 주문이라도 된 건지 나도 모르게 한 권 들어 계산을 하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동해서 사는 책이었다.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이라든가, 에세이의 한 편 한 편마다 녹아있는 감성이라든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에 사로잡힌 주제라든가, 문체라든가, 이런 것을 고려해봤을때 작가가 당연히 여자인 줄 알았다. 에세이 후반부 즈음에서, '어릴 때 빵을 하도 좋아해서 나중에 크면 빵집 딸내미랑 결혼할거야'라고 생각했다는 부분을 읽고서야 작가의 성별을 알았다. 남자임을 알고 나서 보니 새록새록 그 감성이 다시 다가왔다. 감수성이 메마른 남자들밖에 알지 못하는 좁은 인간관계의 부작용이 컸나보다. 편견을 지우고 다시 앞 페이지를 들추니 이 작가가 살고 있는 감성의 온도, 언어의 온도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인스턴트 메시지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 친숙하게 복잡하지 않는 문장과 그 안에 녹아있는 색깔, 메시지가 간결하고 명료하다. 어떤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하고, 숙연해지게 만들기도 하며, 가끔은 별 것도 아닌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구나 싶기도 하다. 이병률과 비슷한 색깔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세련된 맛도 나고, 한 편으로는 법정 스님의 간결한 에세이가 생각나기도 한다. 글을 참 읽기 쉽게 썼지만 그런 문장을 엮기 위해 고생했을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후반부에 이 원고를 작성하다가 병이 났다는 부분을 읽고 '힘들었구나'라고 겨우 알아차렸을만큼. 사람의 감수성에 온도가 있다면, 요즈음 내 온도는 0도였을 터인데, 이 작가의 [언어의 온도] 덕분에 다시 30도 정도는 살아난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한 사람의 글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자들만의 행복한 사치임을 오랜만에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