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아하는 우리 멤버는 4명이다. 우리는 4년 전에 산악회를 결성했다. 이름은 '오르리' 산악회. 어딜 가든 한 차에 다니기 좋으니까 4명, 걷다 보면 자연히 앞서는 사람 두 명, 뒤에 오는 사람 두 명으로 나뉘니 4명이 적당해서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우리 산악회의 첫 산행은 양양의 불바라기 약수터였다.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5월 초순의 미천골은 막 태초에서 깨어난 듯 초록 잎으로 가득하였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숲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좋은 산들을 찾아다녔다. 모든 산들이 좋았다. 한곳도 좋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다닌 곳들이 곰배령, 선자령, 주전골, 방태산, 대관령 금강소나무길, 오세암, 자작나무 숲, 오대산 노인봉, 설악산 등 을 다녀왔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2월에는 제주 올레길도 다녀왔다.
지난 주말 번개로 설악산을 다녀왔다. 귀면암까지 산행을 계획했으나 비선대까지 가니 양폭쪽 통로가 통제 중이었다. 그래서 금강굴까지 다녀왔다. 봄 산은 항상 갓 피어난 초록에 감탄하게 된다. 꽃이 예쁘다지만 새싹으로 둘러싸인 파스텔톤 초록은 못당하리라. 제주를 다녀오고 오랜만의 산행이라 서로 일정을 조율하면서도 설레었다.
제일 발 빠른 H가 속초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왕할머니김밥을 사 오고 우리는 11시에 설악산 B 지구 주차장에서 만났다. 주차를 하고 걸어서 소공원까지 올라갔다. 설악산 소공원까지는 일차선이라 주말이면 항상 차가 밀린다. 역시나 올라가다 보니 차들이 거북이걸음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중간 토왕성 폭포도 감상하고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설악산 소공원에 도착했다. 원래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하는데 얼마 전부터 무료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는 속초시민이라 무료입장이지만. 작년 가을, 내가 신분증을 안 챙겨와 그만 입장료를 물었던 기억에 이번엔 신분증을 잘 챙겨왔는데 무료가 되었다. 하여간 앞으로 무료라니 신분증 안 챙겨서 좋아진 건 분명하다.
일행과 소공원에서 비선대 방향으로 올라갔다. 비선대는 무장애 탐방로 구간이 있어 비교적 걷기 좋은 코스이다. 천천히 산림욕을 하며 걸어간다. 새소리도 들리고 계곡물소리도 시원하게 들린다. 항상 산에 가게 되는 것은 가슴을 뻥 뚫어주는 계곡물소리가 좋아서이다.
"역시 설악이 최고!"라며 감탄하며 걷고 있는데 일행이 비명을 질렀다. 앞을 보니 뱀이 마치 횡단보도를 건너가듯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비선대 길을 많이 걸어봤지만 뱀을 본 적은 처음이다. 우리는 뒷걸음치다 맞은편에서 오시는 분이 그냥 여유롭게 지나가시는 걸 봤다. 그래서 우리도 용기 내서 뱀과 멀찍이 떨어져 지나갔다. 지나고 뒤돌아 보니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쭈뼜선다. 뱀은 몇 년 전 일행들과 양양 갈천 약수터에 갔을 때 본 적이 있었지만 뱀은 항상 무섭다.
뱀을 무사히 지나고 비선대에 올랐다. 비선대 주변 하얀 꽃이 너무 아름답게 피어 검색해 보니 산목련이었다. 산목련은 비선대 물소리를 듣고 자라 저렇게 이쁜 것인가. 지금 한창인 하얀 산목련꽃은 단아하면서 귀품 있으면서 뭔가 고귀하게 느껴졌다.
비선대 옆으로 우뚝 솟은 바위에는 주말이면 암벽등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말이어도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귀면암까지 가려했으나 양폭 방향은 5월 15일까지 통제 중으로 철문이 굳게 잠겨있어 금강굴 방향으로 올라갔다.
금강굴 올라가는 길은 짧은 코스이지만 계단이 많아 오르기 힘든 편이다. 하지만 오르면 탁 트인 전망대가 있어 경치는 정말 끝내준다. 하지만 전망대 바로 전 계단이 약간 무섭다. 바위 옆에 매달아 놓은 다리라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오르기 힘들다. 김밥을 사 온 S가 도저히 무서워서 못 오르겠다고 기권한다. 그리고 다른 일행도 못 오르겠다며 둘은 쉬고 있겠다고 다녀오라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무서워서 벌벌 떨고 건넜는데 몇 번 건너보니 조금 숙달이 된 듯하다. 할 수없이 나와 다른 일행만 전망대를 구경하고 금강굴까지 올라 기도를 하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새로 생긴 쉼터에서 사온 김밥을 먹었다. 커피도 마시고 귤도 먹었다. 산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꿀맛이다. 산에서 먹으면 0칼로리이지 않을까. 맛있는 점심을 먹고 쓰레기도 다 챙겨서 하산했다. 소공원에 내려와 잠시 쉬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꿀맛이었다. 소공원 음식점들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해물파전을 포기한 4명의 여자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함에 푹 절었던 날이었다.
산에 가서 행복하고 산에 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우리. 산에 간다고 다 정상을 밟을 필요는 없다. 자신의 페이스대로 자신의 체력대로 걸으면 된다. 지쳐서 못 가서 쉬는 동안에는 숲에서 산림욕을 하면 된다. 산에서는 절대 욕심을 내서도 안된다. 순리대로 가면 된다.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