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다음 해 시어머님은 식당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어머님이 힘드실까 봐 도와드리러 가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휴일이면 어김없이 식당 일을 도와드리러 가야 했다. 그러다 몇 개월 뒤 첫 임신을 했다. 산모가 좀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일을 그만두었다. 그것도 잠시 안정기에 접어들어서부터는 직장을 안 다니니 매일 식당을 출퇴근했다.
일출 명소 옆에서 있던 식당은 새해 첫날이 대목이니 만삭의 몸으로 음식을 날라야 했다. 그리고 2월 초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보고 싶다는 어머님 말씀에 산후조리 지나고 몇 개월 뒤부터 아이를 데리고 식당 일을 했다. 음식을 할 줄 모르니 나는 서빙이나 설거지 담당이었다. 우리 식당은 돌솥밥을 파는 한정식집이었다. 지금처럼 입식 식탁이 아니라 앉아서 식사하는 좌식 식탁이었고 또 구루마를 사용하지도 않아 일일이 다 쟁반에 올려 직접 들어 날라야 했다. 지금 하라면 못할 것 같은데 그때는 겁도 없이 돌솥 4개 얹은 쟁반도 번쩍 들어 날랐었다. 그래서 지금 손목이랑 무릎이 안 좋다. 그리고 식당 하면서 내 평생 할 설거지를 다했다. 왜 내가 가면 설거지 기계를 안 돌리시는지..... 관광지에 있는 식당이라 주말이면 바쁘고 여름휴가철엔 더 바쁘고 가을 단풍철에는 관광버스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엄마 아빠가 식당에 있는 날이 많으니 자연 우리 아이들도 식당에 대한 추억이 많다. 방학이면 식당에서 살았다. 식당 영업이 끝나면 식당 식탁을 치우고 식당방에서 자면서 방학을 보냈고 명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0년 넘게 해 오던 식당을 몇 년 전에 정리했다. 식당을 안 하니 편한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다. 사실 식당에 못 나가면 집에 있어도 가시방석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바로 돌솥밥,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돌솥밥이 들어간 한정식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혼자 자취생활을 해서 철이 드니 한식이 좋아졌다. 자취할 때 스팸이나 참치를 넣어 김치찌개를 해 먹거나 라면을 먹기 일쑤였고 또 다른 날들은 3분 카레와 3분 짜장을 먹었다. 그래서 지금도 스팸이랑 3분 음식은 잘 먹질 못한다. 질렸다고나 할까. 그래서 푸짐하게 한상 차려진 한정식을 좋아한다.
가끔 가족들과 외식이라도 할라 그러면 남편도 아이들도 고기파라 고깃집으로 많이 가게 된다. 그래서 한정식은 지인들과 주로 다니게 된다. 힘들고 고된 식당 일이어도 시어머님이 가끔씩 해주시던 따끈한 돌솥밥과 열기구이가 생각난다. 특히 우리 식당의 감자조림과 코다리조림이 메인이었고 톳무침, 두부조림, 가지볶음이 나오는 날은 손님도 나도 두 접시씩 먹었다. 내가 나물 좋아하는 것 알고 어머니는 나물을 새로 무치면 식사 때 한 접시씩 올려주시곤 했다.
식당 바로 옆에 텃밭도 있어서 고추며 상추, 오이, 감자, 마늘, 배추를 어머님이 직접 키우셨다. 그러면 여름에 그 여린 고추와 오이를 따다 장 찍어 먹으면 맛있었다. 여름철 감자 캐서 감자전 해 먹던 비 오던 날도 기억나고 초겨울이면 텃밭의 배추로 200포기씩 김장을 담그던 알싸하게 춥던 날도 기억난다.
그 시절, 때를 놓치고 3시쯤 가스불에 돌솥밥이 올려지고 부글부글 끓어 밥 냄새가 풍기면 그래도 살 것 같았다. 생선도 노릇노릇 구어 담고 좋아하는 반찬을 그릇에 담아냈다. 약수로 지어 노오란 빛을 띠는 돌솥밥을 어느 정도 푸고 물을 부어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먹고 나면 노곤하게 잠이 쏟아졌다. 힘든 시절이 다 힘들지 않았구나 싶다. 지나 보니 말이다. 볕 좋은 봄날 좋은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돌솥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