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걷기 좋은 계절이 돌아온다. 특히 5월은 어디를 걸어도 아름답고 찬란하다. 햇살도 적당하고 지천에 꽃이 만개한 봄날엔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신발 신고 나가야 하리라. 산과 들의 부름을 외면하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서둘러 길을 나선다. 문득 걷기는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생각해 본다.
20대에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많이 돌아다녔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걸어서도 다니고 버스를 타고 내려서 또 걸어 다녔다. 신입이라 주로 주택가를 많이 돌았다. 집을 찾아 골목골목을 다녔다. 지치고 싫었을 것 같지만 그 길들이 너무 좋았다. 새로 들어온 회원의 집을 골목길 따라 꼬불꼬불 찾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작은 골목길에 만나는 아이들도 좋았고 꽃이며 나무도 좋았다.
지금도 간혹 걸을 일이 있으면 골목골목 천천히 걷는 것이 좋다. 그냥 바람도 느껴보고 햇살도 느껴보고. 요즘 같은 봄에는 집집마다 얕은 대문 안 마당에 피어난 꽃들을 살펴보는 것이 낙이다. 아파트에 20년 살았으니 다시 주택에 살아볼까 생각도 든다.
오늘은 퇴근길 S과 함께 걸었다. 낙산사를 한 바퀴 돌고 설악해수욕장과 정암해수욕장 지나 물치까지 걷는 여정이었다. 오후 5시의 햇살은 벌써 뜨거웠다. 천천히 걸어 먼저 낙산사 의상대에 들렀다 다시 홍련암으로 향했다. 낙산사는 항상 언제든지 옳다. 평일 오후 한적한 사찰은 여행자의 발걸음과 마음을 달래준다. S와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간다.
홍련암에서 절을 하고 다시 돌아 나와 해수관음상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이 길을 정말 수십 번도 더 걸었다. 몇 년 전 양양으로 출퇴근하던 시절, 금요일 퇴근길이면 낙산사를 들렀다 집에 가곤 했다. 뭐랄까 사찰의 고요함과 평온함을 좋아했던 것 같다. 게다가 낙산사는 바다를 끼고 있고 경치가 수려해서 갈 때마다 변하는 바다 풍경에 반하는 곳이다. 조용히 혼자 산책해도 좋고 이렇게 지인과 함께 걸어도 좋은 곳이다.
해수관음상에 오르면 꽤 넓은 공간에 커다란 해수관음상이 보이고 탁 트인 양양 바다가 들어온다. 해수관음상 둘레 가장자리로 소나무가 있고 주변 의자가 있어 앉아 좀 쉬어간다. 의자에 앉자 S가 가방에서 뭔가 꺼낸다. 커피가 들은 보온병과 빵이었다. 항상 뭔가를 챙겨주려고 하고 마음 써 주는 S이다. 오늘도 받기만 했다. 이렇게 커피를 챙겨와 마시는 것도 좋아서 다음에도 커피를 챙겨온다고 말한다.
좀 쉬다가 낙산사를 내려와 설악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찻길 바로 옆을 지나다가 바다 옆을 지나간다. 역시 바다는 항상 봐도 동해바다가 제일이다. 차츰 해가 지면서 왼편 설악 능선이 붉게 물든다.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지난 2월 제주 올레길을 다녀왔는데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바로 올레길인 걸 너무 멀리 찾아갔다고 S와 얘기한다. 걸음 코드가 맞는 S와 양양 둘레길 산책이 행복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