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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un 02. 2023

비오는 날의 추억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퍼진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작은 도시를 삼켜버렸던 안개가 걷히고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보슬보슬 적당히 내리는 비가 좋다.  오후 아이가 수행평가 ppt를 하면서 혹시 팽이버섯이 있는지 물어본다. 수행 과제 끝나면 마라탕을 해먹을 거라고 한다. "아마도 있을걸."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팽이버섯이 없다. 집 앞 편의점 두 곳을 가봐도 팽이버섯은 없어서 할 수없이 좀 먼 마트까지 다녀왔다.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간다. 보도블록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 길가에 줄지어 피어있는 샛노란 금계국이 유독 더 눈에  띄어 바라보니 투명한 물방울을 머금고 있다. 휴일 오후라 사람들이 간간이 오간다. 비 오는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상점들의 전등이 켜진다. 나오기 전에는 비가 와서 귀찮은 마음이 컸는데 아이의 부탁으로 마트까지 가는 길이 싫지 않다. 아마도 내일 또 하루 더 쉴 수 있다는 것이 마음의 여유를 선사한다. 도착한 마트에서 팽이버섯을 혹시 몰라 2개를 사고 건너편 베이커리 집에서 아이 좋아하는 소금빵과 에그타르트도 샀다. 


오전에 비 오는 날 마라톤에 참여한다는 글벗님의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 기간이었다. 친구와 독서실에서 밤새워서 공부하자고 약속하고 함께 독서실을 갔다. 버스로 한두 정거장 건너 있던 독서실이었던 같다. 밤새 공부하자는 약속은 개뿔! 12시 넘어가니 비몽사몽 헤매다 결국은 책상에 엎드려 쿨쿨 잠만 잤다. 친구도 나도 그냥 집에 가서 편히 자자 생각해서 새벽 첫차를 타려고 독서실을 나섰다.


독서실에서 나오는데 소나기가 내렸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난감했다. 가방으로 비를 가려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냥 온몸으로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버스는 어떻게 탔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던 억수 같던 비가 기억난다. 잠을 깨우던 그 시원한 소나기를 잊을 수 없다. 친구랑 너무 황당해서 함께 웃었다. 그냥 모든 것이 재밌고 즐겁던 여고시절, 청춘의 한자락을 장식하는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돌아갈 수 없어서 더 애틋한 순간이다.


집을 돌아와 아이가 마라탕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며 혹시 비에 관한 추억이 있는지 물어봤다.'비 오는 날'하면 기억나는 것은 학교 끝날 무렵 비가 오면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가 우산 들고 와서 기다리는데 혼자 비 맞고 왔던 기억을 얘기한다. 직장에 매인 몸이라 매번 비 올 때마다 아이에게 우산을 가져다주기 힘들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집이 학교 코앞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속상한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있나 보다. 아이가 더 크면 나처럼 이런 수채화 같은 추억들이 많이 쌓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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