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며칠전 사다놓은 닭봉으로 치킨을 튀기신다는 우리집 고딩! 몇년전 삼촌집에 놀러갔을 때 삼촌이 튀겨준 치킨이 맛있었다며 치킨을 만들거라고 한다. 치킨을 시켜달라는 걸 너무 늦었다고 다음에 먹자고 했더니 직접 튀겨먹는다고 한다. 저녁에 학원을 다녀오니 9시가 다 되가는 이 야밤에 말이다. 치킨을 다 만들어 먹고 치우면 10시가 넘을 것 같고 내일 쉬는 날도 아닌데 치킨이 그렇게 쉬운줄 아냐며 싫은 내색을 했다.
내가 궁시렁 거리거나 말거나 딸은 혼자 다 만들고 뒷정리까지 다 할테니 걱정말라고 한다. 아이는 냉장고에서 먼저 닭을 꺼내 헹구어 넓은 후라이팬에 담아 한번 끓여낸다. 그렇게 우루룩 한번 끓이고 닭봉을 헹구어 담아 놓았다. 그리고 찬장을 보더니 콩기름이 조금밖에 없다고 엄마인 나한테 편의점에 좀 다녀오라고 한다. 나는 늦은 밤에 주방에서 일벌리는 딸아이가 못마땅해 단칼에 싫다고 했다.
'내가 심부름 부탁하면 너도 안 해줬잖아!'
아이는 금방 편의점에 가서 기름을 사오더니 볼을 꺼내어 치킨양념을 만든다. 카레가루와 밀가루, 튀김가루를 넣고 섞다가 소금과 후추도 뿌렸다. 금새 노오란 양념이 완성됐다. 그리고 밀가루를 넓은 접시에 덜어놓고 닭봉에 가루를 묻히고 또 그렇게 밀가루가 입혀진 닭봉을 노란 양념에 퐁당한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불을 켜놓고 온도를 올린 다음 소금을 넣어보면서 온도를 체크한다. 소금을 넣어서 올라오면 적당한 온도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의 스승은 당연 유선생이다. 유튜브 영상으로 미리 치킨 만드는 걸 예습했다나 뭐라나. 양념을 묻힌 닭봉을 기름에 넣고 튀기기 시작한다. 얼마지나지 않아 근사한 치킨 냄새가 난다. 거실에서 빨래를 개던 나는 냄새에 홀려 주방에 다가간다. 괜히 설거지도 좀 해주고 필요한게 없는지 살핀다. 딸은 연신 치킨을 튀겨내고 있고 남은 양념이 아깝다고 해서 냉장고에서 양파를 꺼내준다. 노란 양념에 채썬 양파를 넣으니 야채 튀김맛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고딩은 치킨을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닭봉을 한번 튀겨낸 다음 또 한번, 두번을 튀겨낸다. 바삭하게 갈색으로 튀겨진 치킨과 노란 양파튀김을 식탁에 올린다. 하지만 아직 먹으면 안된단다. 소스를 만들어야 한단다. 불닭소스에 올리고당을 넣고 물을 좀 탄 다음 후추를 톡톡 뿌려 치킨소스를 만들어 담아낸다. 이제 맛을 보란다. 이미 치킨향에 취한 나는 행복한 미소를 장착하고 먼저 양파튀김을 먹어봤다.
"와! 이거 대박인데! 그냥 양파링이네. 어니언링!"
양파튀김은 생각보다 훨씬 놀라운 퀄리티였다. 그 다음 심혈을 기울인 고딩의 야심작, 치킨!
"오호! 정말 치킨인데, 바삭한 후라이드 치킨이야!"
정말 오토바이 아저씨가 띵동하고 배달해주는 대기업 치킨맛이 났다. 신통방통한 맛이 났다.
치킨을 먹으며 진심으로 진로를 요리사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평소 혼자 사부작사부작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다. 겨울에 귤이랑 딸기로 노상 탕후루를 만들어먹고, 엄마를 위해 그릭요거트도 만들어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마라탕도 직접 만들어 먹으니 말이다. 치킨을 먹으며 좀 고민을 하는 눈치다. 하지만 얼른 치킨을 드시고 나서는 늦게 들어올 아빠를 위해 치킨을 남겨놓으며 샤워를 하러 사라진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주방은 고유한 내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나보다 능숙하게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성큼성큼 자라는 아이가 보인다. 사실 아이는 공부가 하기 싫어 치킨을 튀긴 것일 것이다. 공부하기 싫어 주구장창 핸드폰만 보고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해야 할 시간에 주방에서 기름냄새 풍기며 분주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같이 있어주는 시간이 어쩔땐 힘겨울때가 있다. 잔소리가 목을 타고 올라오지만 참아야한다. 어쩌면 아이는 나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니 목이 메인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딸에게 속내를 감추며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우리 딸 오늘도 수고했어, 덕분에 맛있는 치킨도 먹고. 얼른 자. 그리고 사랑해!"
부모는 항상 수행자가 되어야 하는가보다 생각하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잠자리에서 책을 펼쳤는데 문득 들어온 문구가 있다.
"부모는 욕심보다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보다 귀한 것은 자녀들의 일생을 위한 사랑이다. 그리고 인생은 50이 되기 전에 평가해서는 안된다. "
김형석 철학자의 <백년을 살아보니>책 속 문장이다. 나는 100세 인생, 아이는 120세 인생을 살게 될 것인데 고작 18살의 인생을 평하기엔 일러도 너무 이르다. 무르익지 못한 부모가 오늘도 부모되기를 하나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