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는 방학을 맞아 지난 금요일 집에 왔다. 학교가 진주에 있어 오후 2시쯤 KTX를 타고 서울에서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 와서 KTX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시속 30km로 천천히 달려 평소보다 늦게 집에 왔다.
진주역에서 이제 출발할 거라는 큰 아이의 전화를 받고 무사히 도착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아이 방 정리를 시작으로 거실이며 베란다 청소를 했다. 학교 끝나고 오후에 집에 돌아온 작은 아이가 집에 들어오더니 소리를 질렀다.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물으니 "거실에 물건이 하나도 없어서 우리 집 도둑 들은 줄 알았어."라고 한다. 도둑이 돈이나 금붙이를 훔쳐 가지 무슨 책이나 물건을 들고 가냐고 말했지만 속으로 좀 민망했다. 그동안 책 본다 글 쓴다고 집안일을 소홀히 한건 사실이다. 오랜만에 정리 정돈을 했더니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하다니 그 발상이 더 놀랍다. 거의 두 달 만에 집에 오는 큰아이에게 너저분한 집을 보여주기 싫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집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청소가 끝나고 나서는 아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숙사에서 급식만 먹다가 집으로 돌아오기에 아이를 위해 평소 좋아하는 돼지갈비도 재우고 얼큰한 김치찌개도 끓였다. 지금 제철인 복숭아도 미리 깎아놓고 거하게 로제 와인도 한 병 준비해 놓았다.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다가 시어머님도 아들 키우실 때 내 맘 같으셨겠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시어머니가 될 것이니 요즘 시어머님의 마음을 좀 이해하게 된다. 시어머님은 당신의 아들을 정말 사랑하신다. 시아버님 서른이 넘어 나으신 아들이라 시부모님이 오냐오냐 손안에 두고 키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할 때 시어머님께서는 "우리 아들은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단다."라고 말씀해서 좀 당황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아들은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남자인데도 손도 여리여리해서 뭔가를 시키면 꼭 피를 봤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더 빠르고 속 편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어머님 아들보다 내 아들에게 시키는 것이 맘도 편하고 일도 잘했다. 시누이는 우스갯소리로 오빠는 생선을 먹어도 어려서부터 살코기를 먹었고 시누이는 생선 머리를 먹어서 지금도 생선 대가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며 내 아들은 그렇게 키우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도 별수 없나 보다.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작은 아이가 불만을 얘기한다. 오빠는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밥을 같이 먹어도 다 먹은 밥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지 않아서 내가 출근하고 없는 한낮 오빠랑 다투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금방 화해했지만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니 나도 시어머님과 다를 바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이도 오빠가 타지에 있으니 오빠가 오면 많이 양보한다는 것을 안다. 내가 없으면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애쓰는 것도 알고 있다. 엄마가 오빠만 챙겨주려고 해서 서운한 맘을 표현하지 않지만 그것도 알고 있다. 큰 아이대로 겪고 있는 타지에서의 고충을 알고 작은 아이의 서운함도 이해가 된다. 이러면 부모로서 지혜롭게 말해 주며 상황 정리를 해주고 싶은데...... 역시 고딩도 육아는 어렵다!
나도 어린 시절 돌아보면 중학생 때 8살 터울인 남동생에게만 아이스크림을 사줬다고 서운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더운 여름날 시장에 간 엄마가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려 데리고 들어왔을 터인데 그때 나는 그게 그렇게 서운했었다. 이처럼 사소한 서운함이 평생 간다. 큰아이는 지금 친구들과 여행 중이니 작은 아이의 서운함이 더 커지지 않게 주말 가까운 곳으로 둘만의 데이트를 해보려 한다. 그렇게 일대일 마크하며 엄마 보충수업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