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라는 그 이름

by 산호


지난주 한 초등 교사의 가슴 아픈 기사를 접했다. 2년 차 젊은 초등 교사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3년 전쯤 K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다. 눈을 씻고 봐도 선생님의 부모님이 아닌 선생님 당사자였다. 철렁하는 마음에 알아보니 K 선생님이 지난밤 돌아가셨다고 한다. 곧 병가를 내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K 선생님은 나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다 지역 만기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전근 간 학교에서 저학년 담임을 맡으셨다. 예전 학교에서도 말썽꾸러기 아이들 때문에 힘드셨는데 새로 간 학교에서는 더 힘드셨던 것 같다. 학기는 다 마치고자 했지만 병원에서 쉬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병가를 내셨다. K 선생님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계셨기에 어머니에게 이러저러해서 병가를 낼 거라는 상황 설명을 하시면서 그간 마음고생의 설움이 북받쳐 통곡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 쓰러지셨고 끝내 눈을 뜨지 못하셨다.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와서 교사가 아닌 교육공무직 교육복지사로 초등에서 9년, 중등에서 3년 차를 보내고 있다. 내가 옆에서는 보는 '교사'라는 직업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일하지 않아도 월급이 나오는 편한 직업은 아니었다. 만약 내 아이들이 교사를 한다고 하면(사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말리고 싶을 정도로 감정노동이 심한 직업이다. 학급에 말 안 듣고 산만한 학생이 한 명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 학급에 3-4명씩 있게 되면 그 선생님은 한 학기가 정말 고역이 된다. 또한 한 반에 25명의 아이가 있다고 하면 학부모까지 선생님 혼자 학생과 학부모, 모두 50명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교육의 본질보다 학부모의 민원에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 아이들의 교육은 과연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우리 세대는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고 자란 세대이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는데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선생님'이라는 그 이름이 이제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퇴색되고 있다. 내 아이가 더우니 에어컨 온도 낮춰 달라고 학교에 전화하고 내 아이 미세먼지에 몸 상할까 봐 공기청정기 모델을 알려달라고 전화하는 세대이다. 친구들과 투닥거리면 어김없이 학폭 회의가 열리고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려 하면 언성을 높이고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모두 다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우리 어릴 적보다 민원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23살 꽃다운 선생님의 안타까운 소식에 맘이 무겁다. 선생님들이 제일 기다리는 방학이 코앞이었는데 그 시간까지 버틸 여력이 없었다니..... 학교라는 공간이 죽기보다 싫었을 것인데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니.... 아무도 옆에서 함께해 주지 않았던 것일까..... 선생님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비통한 마음뿐이다.


우리 아이가 귀한 것처럼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었을 선생님, 부디 다음 생에선 선생님 하지 말고 훨훨 날아다니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 이상 우리 선생님들의 명복을 비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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