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같은 아이들

by 산호

지난주 우산을 빌려 갔던 장미가 찾아왔다. 폼생폼사 중학생이 화창하게 갠 날 우산을 들고 등교했을 걸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 교실에는 양심우산이 있다. 비가 올 때 우산이 없으면 대여해 주는 우산이다. 양심껏 반납해 달라고 양심우산이라고 이름 붙였다. 모든 우산이 다 회수되길 바라진 않는다. 그냥 엄마, 이모, 고모,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하굣길 아이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한 학기 끝나면 되돌아온 우산은 80% 정도 된다. 개중에는 비바람에 우산이 망가져 그냥 버렸다는 학생도 있고, 깜빡하고 정말 졸업할 때까지 안 가지고 오는 학생도 있다. 학기가 끝나면 우산을 사서 보충을 한다. 그리고 학년말 교실에서 버려지는 우산을 가져오기도 하고 쓰레기장에서 괜찮은 우산이 있으면 가져도 놓기도 한다. 각양각색의 우산이 모여있다. 아이들의 각자 취향도 존중해 줘야 하니 비가 와 빌리러 온 학생이 있으면 우선 우산을 펴보고 괜찮은지 물어보고 빌려준다. 간혹 색이 너무 튀어 싫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 할 수 없이 돌아가는 아이에게 내 우산을 빌려주기도 한다.


장미와 처음 만난건 1학년 때였다. 아이는 화창한 봄철인데도 하얀색 뽀글이 겨울잠바를 입고 있었다. 1학년이 끝나가도록 그 잠바만 입고 다녔다. 시간이 갈수록 하얗던 잠바는 회색빛이 되어갔다. 급식소에서 마주친 아이는 더운 여름인데도 그 뽀글이 잠바를 입고 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담임선생님과 얘기해서 새 옷을 구입해 줬지만 아이는 그 옷을 입지 않았다. 하루는 아이를 불러 얘기를 나눴다. 아빠와 떨어져 살고 있던 아이는 아빠가 사주신 옷이라 더 애착을 느낀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색깔의 친구는 잘 용납하지 못한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표정을 짓고 다른 생각을 하면 그 무리에 끼지 못한다. 무리에 끼지 못하면 결국 혼자가 된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고 2학년이 된 장미는 그 뽀글이 잠바를 입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새 학기에 나타났다. 달라진 아이가 이쁘고 기특해서 그 옷을 어떻게 벗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아이가 들려주는 말은 "그냥이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이라는 말이 무성의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나는 이내 수긍이 갔다. 이젠 그냥 그 옷을 벗어버릴 때가 왔다고 스스로 느낀 것이었다. 나비가 누에고치를 벗어던지고 탈바꿈하는 것처럼 아이는 성숙해져 있었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도 매만진다.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는 학교 오기 싫어도 급식 먹으러 오라고 아이들에게 농담하지만 중학교에 와서는 화장하러라도 학교 나오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자기만의 동굴에서 한 발짝씩 나와 성장해 가는 과정이 우리 아이들 키우는 것보다 더 애틋하다. 우산을 빌리러 와주는 것만도 고맙고 배고프다고 간식을 달라고 때 쓰는 것도 고맙다. 시험 기간인데도 컴싸가 없다고 선생님 빨리 내놓으라는 아이도 못 말리지만 사랑스럽다. 어쨌든 학교에 와 주는 것이 고맙다.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공교육 안에 있을 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혼자 있으면 웹툰만 보고 릴스만 보고 게임만 주구장창하고 그렇게 수많은 밤을 새울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 출근길에는 또 다른 장미가 선생님 만 원만 빌려주세요? 하고 전화가 왔다. 집이 학교에서 먼 학생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학교에 와야한다. 그런데 오늘은 늦어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할머니에게 얘기하면 혼날게 뻔하니 나한테 전화를 한 것이다. 차를 얼른 주차를 하고 토스로 만 원을 입금했다. 아이는 아르바이트비가 7월에 나오니 그때 갚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안 갚을 수도 있다. 내 수중의 만 원은 큰돈은 아니지만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이런 일을 반복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고민이 된다. 매주 와서 청소를 하면 천 원씩 감할까? 방학 프로그램 도우미가 필요하다고 할까? 요리조리 궁리 중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한 아이가 살아가려면 진실한 어른 한 명이라도 옆에 있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온 마을이 관심을 쏟지만 정작 잘난 아이, 결국은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만 집중된다. 우리 아이는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살아내는 거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키우는 장미 70송이 중에 나는 한 송이라도 정성껏 키워보려고 한다. 아름다운 5월 장미는 꽃을 피우기 위해 나머지 11달을 하늘을 보고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푸른 잎과 가시를 키우고 있다. 우리의 장미가 잘 자라 자신의 5월에 이쁘게 꽃 피우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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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mie452,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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