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좋아하던 아이

by 산호


나는 울었다. 8월 어느 여름날, 마음으로 울었다.


나는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가 다 해피엔딩이지 않기에...


처음 교육복지사라는 일을 시작하던 때는 내가 막 마흔이 되었을 때였다. 둘째를 낳고 시작한 공부가 어찌어찌 나를 학교라는 공간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학교 안의 사회복지사라는 타이틀로 행복나눔실에서 근무한다. 처음 발령을 받은 학교는 지역에서도 규모가 제법 큰 초등학교였다. 엄마들 치맛바람이 장난 아니라는 그곳. 나는 멋도 모르고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라 지원을 하였고 다행히 원하는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학교에 자리가 잡히자 가정방문을 나갔다. 10년 전 일이라 간도 크게 혼자 가정방문을 나갔다. 학교 근처 작은 연립 건물 2층 집에 방문했다. 어머니는 다행히 집에 계셨다. 거실에 불은 환한데 커튼이 쳐져 있었다. 그리고 소리도 안 나는 티브이는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듯 연신 반짝였다. 어머니는 내게 요구르트를 권했다. 나는 요구르트 홀짝홀짝 마시며 거실 분위기를 빠르게 스캔했다.


그러다 내 눈에 걸린 투명한 대병. 것도 한 병이 아니라 여러 병이다. 소주 대병 참 오랜만에 봤다. 울 아버지 소싯적 드시던 대병을 말이다. 가정방문 간 집의 어머니는 알콜중독자였고 그 일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고 계셨다. 그 당시도 퇴원해서 집에 계셔서 간신히 만나게 되었다. 생각보다 다정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집을 나왔다.


어머니의 아이는 5학년 여자아이였다. 그 나이에 겪어서는 안 될 일을 5학년 여자아이는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잊지 못하는 여학생 중 한 명이다. 아이는 말을 좋아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아동센터에서 가는 승마 수업을 좋아했다. 매주 다녀오면 말 사진을 보여주며 좋아했던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그림 한 장을 보여주셨다. 집에서 놀고 있는 있는 아이의 그림 속 배경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그 길로 가정방문을 다녀온 것이었다.


왜 아이의 그림에 검은색을 많이 사용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항상 환청에 시달려 매일 커튼을 닫고 생활을 하셨고 매일 술을 드셨다. 아이는 엄마가 병원에 가 있으면 대구 고모 집에 가있다가 다시 이곳으로 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아이가 방학 동안 대구로 전학을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도 아이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먼저 붉어진다. 고모의 집도 그리 안전한 집이 아니기에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아이의 상황이 마음 아팠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나는 아이보다 더 어린 유치원 아이들을 키우고 있을 때였다. 성실한 아이니까 방학 동안에도 아동센터를 잘 다니고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방학 동안 아이에게 전화라도 한번 해볼걸, 내가 좀 더 챙겼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아이가 다시 전학 오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아이는 다시 오질 않았다.


엄마와 아빠의 빈자리를 말을 보며 채워갔던 아이는 지금은 다 커서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디에 있든 항상 잘 살아주길 바라던 아이였다. 나도 돌아보면 아직도 어린 시절 아픔들로 울컥울컥 할 때가 있다. 아이는 이제 성인일 테니 지난 아픔에 잠식되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또 친부 친모보다 더 좋은 어른들이 항상 아이 곁에 함께 하길 바란다. 나도 그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아이를 대하고 나부터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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