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타 선생님은 열다섯 살

by 산호


기타 레슨은 여름방학하는 날 시작되었다. 방학 때는 기타 선생님이 일주일 두 번씩 학교로 직접 와서 가르쳐 주었고 개학하고는 방과 후 일주일 4번 기타 레슨을 받고 있다. 내 기타 선생님은 바로 열다섯 중학교 3학년 희수이다. 희수는 1학년 때부터 기타 학원을 다녔고 지금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방학이 며칠 안 남은 어느 날 학교 끝나고 행복나눔실에 놀러 온 희수가 기타 연습을 하고 있었다.

"희수 기타 연주 들으니 너무 좋다. 선생님도 기타 배우고 싶어지는데."

"진짜요? 샘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희수는 눈이 반짝이며 말했고 방학과 동시에 개인 레슨이 시작되었다. 이 아이는 기타 레슨에 진심이다. 하지만 인지능력의 퇴화를 절실히 경험하고 있는 오십 대인 나는 진도가 참 더디게 나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일주일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니 아주 쬐금 실력이 늘기는 했다. 아이는 내가 연습을 안해와도 틀리게 연주해도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 천성이 그렇다.


"이렇게 하면 돼요."

"이렇게 해보세요. 선생님."

하고 자상하게 가르쳐 준다. 어제는 자신의 기타를 학교까지 가지고 와서 나의 엉성한 연주에 화음도 넣어주었다. 함께 연주하니 어느 정도 실력인지 알 수 있었고 내가 조금 삐끄덕 거리지만 연주가 근사했다.




"희수 좀 집으로 보내주세요."

2년 전 여름방학하는 날 희수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을 가야 하는데 지금 같이 가 줄 식구는 희수밖에 없다고. 고등학교 다니는 오빠가 지금 연락이 안 되고 아버지는 택배 일을 하셔서 시간을 도저히 뺄 수가 없다고 하신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과 교실 정리 중이셔서 전화를 안 받으시니 내게 전화를 하신 거였다. 얼른 아이 반을 찾아가 담임선생님께 얘기를 하고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며칠 후 어머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 희수 나이 12살이었다. 희수가 유치원부터 투병생활을 시작하셨다는 어머니는 끝내 희수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개학을 했고 아이는 천진스럽게 엄마의 부재를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하고 다녔다."우리 엄마 돌아가셨다."


고작 12살이었던 아이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잘 친하지 않은 친구들, 처음 본 선배들에게도 얘기를 하니 아이의 슬픈 이야기는 왜곡되기도 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희수를 불러 놓고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모르는 사람이나 친구들에게 엄마 돌아가셨다고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차라리 선생님한테 얘기하라고......




그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행복나눔실에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뿐이다. 1학년부터 봐온 우리 꼬마 아가씨는 요즘같이 비가 자주 오는 날이면 걸어서 학교를 오기 때문에 신발이 젖기 일쑤이다. 그럼 오전내 선풍기로 신발을 뽀송하게 말려 준다.


"쌤, 배고파요."

그러면 간식 내어주고,

"쌤, 연필 빌려주세요."

그러면 연필을 대령하고

"쌤, 프린트해 주세요."

그러면 얼른 프리트 물을 출력해서 준다.

어떨 때는 우리 집 막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희수의 기타 레슨은 어머니 기일 2주년이 되던 여름방학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는 이제 엄마에 대해 얘기하지 않지만 그 슬픔은 마음으로 느낀다. 기타 레슨을 핑계로 방학에도 아이를 볼 수 있음이 감사했다. 어제는 집에tj도 연습을 하려고 기타를 둘러메고 퇴근했다. 나를 보고 희수는

"쌤 연습 열심히 하세요."

무뚝뚝하게 말하고 걸어간다.

'그래, 너도 열심히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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