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차리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고 처음에는 별일 없이 넘어갈 것 같았는데 좀 심각해지는 분위기라고 아들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전해온다.
나를 닮아서인지 아들은 좀 걱정이 많은 성격이다. 나 또한 전화를 받고 나니 맘이 심란해진다. 저녁을 차리다 말고 폰을 들어 MBC 미니를 틀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한다. 마침 배철수 아저씨(나이 오십에도 배철수 아저씨는 20대 때부터 아저씨였다)의 배캠이 나온다. 그런데 몇 초간 방송이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 같다. 우리 배캠지기들은 디제이의 실수도 방송사고도 좋아한다. 그저 아저씨가 배캠을 지켜주시는 것이 감사하다. 정국과 찰리 푸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들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이지만 입으로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엄마, 맞아?
나의 음악사랑은 10대부터 시작되었다. 가요도 좋아했지만 특히 팝음악을 좋아했다. 특히란 수식어도 모자랄정도로. 아침이든 밤이든 항상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방황하고 힘들었던 10대, 유일한 나의 취미는 음악 감상이었다. 물론 더 방황하던 20대에는 심야 라디오가 유일한 나의 위안이었다. 새벽 2시에 기형도의 시를 읊어주시던 그 디제이 아저씨는 어디 계실까?
그 시절 부산 광복동엔 무아음악감실이 있었고 서면에 가면 랩소디 음악감상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뭘 안다고 음악감상실을 들락거리며 음악을 들었을까 싶다. 친구가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나는 혼자 음악감상실을 다녔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낯선 곳을 몹시 낯설어하던 내가 음악감상실은 좋아했다.
지금도 혼밥, 혼영, 혼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마도 그 시절 혼자 음악감상실 다니면서 배운 스킬이 아닐까 싶다. 아이 학교나 학원 픽업으로 시간이 날 때 혼자 카페에서 가는 걸 좋아하고 집 앞 3분컷 영화관에 조조영화를 보러 가기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너무 작은 소도시라 스타벅스에 가도 꼭 아는 사람을 만난다. 혼자 영화라도 보려고 하면 꼭 아는 학생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혼술은 특히나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볼까 봐 아이들 어릴 적에는 아이를 옆자리에 앉혀놓고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더 같이 가고 싶어 한다. 혹시나 맥주 한 모금이라도 얻어 마실까 하고. 어림도 없지만 말이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 무아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신청한다면 미래의 우리 아이를 위한 신청곡으로 비틀스의 렛잇비를 신청하고 싶다.
- 큰 아이의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가 신청합니다. 지금은 흔들려도 아름다운 나이라는 걸 기억해. 좀 더 너다운 인생을 위해 조금은 흔들려보자! 그리고 다시 제자리~ 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