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호 Jun 27. 2022

파도를 넘다

 2020년 초 코로나로 세상이 들썩일 때 직장을 그만두고자 했었다. 상사에게 시댁 어르신을 돌봐야 한다는 거짓된 핑계를 대면서 그만둔다고 말하였다. 그때 상사는 나에게 시댁 일로 직장을 빠져야 한다면 괜찮다고 했다. 그냥 눈감아 줄 테니 편하게 시댁을 왔다 갔다 하며 시어르신을 돌보라고 했다. 대신 직장은 그만두지 말라고 당부했다. 상사의 지인도 직장을 그만두었다 2-3년 뒤 후회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만두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6개월 정도 다녀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그녀는 흔들리는 내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말했다.


당시 나는 나이 마흔에 어렵게 재취업하여 정신없이 직장과 육아를 버텨내다 보니 번아웃이 왔었다. 모든 일이 하기 싫었고 이렇게 직장이 있다는 것은 직장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 사람 관계도 소홀하게 되고 그렇게 하루하루 직장에서 시간 보내는 것이 힘들어질 때였다. 좀 쉬고 싶었다. 나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상사와 대화를 마치고 나니 나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1시간도 안 되는 대화로 맘이 약해진 나는 ‘그래, 몇 개월만 더 생각해 보자.' 맘이 바뀌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만약 그때 그만두었더라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앞으로 남은 나의 정년은 12년이다. 아마 정년은 다 채우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생 설계를 하고 있지만 거창한 것은 없다. 특별한 재주 없는 나는 알바 인생을 살지 않을까 한다. 편의점이나 빵집, 또는 바닷가 보이는 커피숍에서 하루 4시간씩만 일하는 알바를 하고 싶다. 나이 많은 아줌마를 누가 써줄지 모르지만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평생교육센터에서 생산적인 뭔가를 배우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으로 채워나가고 싶다.


아직도 일요일이면 월요일 출근을 무의식 중에 걱정하는지 잠이 잘 안 온다. 하지만 월요일 출근해서 따뜻한 라떼 한잔 마시는 시간은 항상 행복하다. 동료들과의 티타임 시간은 언제나 따뜻하다. 참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그렇게 1년을 무사히 보내고 작년 발령이 나면서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지난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분명 기쁜 일들도 언저리에 있었다. 그런 시간을 잘 지나왔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꼬박꼬박 17일이면 어김없이 입금되는 내 쥐꼬리만 한 월급에게도 감사하다. 역시 마약 같은 월급 때문에 아직까지 직장인으로 생존해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또한 그때 나를 붙잡아 준 상사에게도 감사하다. 상사는 8월에 정년을 앞두고 있다. 내 안의 파도를 잘 잠재워준 그분께서도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당신의 파도도 잘 타고 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한 시절 뒤로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