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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un 25. 2022

행복한 시절 뒤로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들

지난 목요일 폭우에 흠뻑 젖었던 가족들 신발을 이른 아침부터 빨고 있다. 오늘은 벌써 아침부터 덥다. 신발은 정말 잘 마르리라. 신발 솔에 재생비누를 묻혀 박박 닦고 물로 서너 번 헹군다. 이렇게 더운 날도 신발 빨기 힘든데 그 옛날 추운 겨울 어떻게 신발을 빨았을까?





나의 어린 시절은 같은 반 친구의 쌀가게 뒷채에 얹혀 살았다. 엄마는 둘째이면서 첫딸인 나에게 심부름도 많이 시키고 집안일도 많이 시켰다. 어두컴컴한 새벽녘 핑크빛 바가지와 500원을 들려 두부가게에 두부 한모 사 오라고 심부름도 시켰고 쌀가게 주인아주머니에게 쌀 외상을 달라고도 시켰다. 아마도 어린아이가 가면 두부가게 아주머니가 두부를 큼직한 걸로 골라주고, 쌀가게 주인아주머니께서 외상을 외면하기 힘드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빠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엄마는 주말 아침이면 마당의 빨간 대야에 온 가족 빨래를 가득 담아놨다. 그러면 나는 빨래도 하고 운동화도 빨았다. 여름은 견딜만했지만 겨울엔 고무장갑을 끼어도 차가운 물로 빨래를 하기엔 손이 너무 시렸다. 그땐 세탁기도 없었고 뜨거운 물도 머리 감을 때나 데워서 써야 했던 시절이었다.


집안일을 돕기엔 다섯 살 터울이었던 여동생은 너무 어렸고 집안의 장녀로서 나는 당연히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야 엄마가 떠나지 않고 우리를 키워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행복한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행복한 시절 뒤로 가끔씩 떠오르는 기억들... 신발의 뿌연 비눗물을 헹구어 내면서 떠오른 어린 추억들이 나이 오십에도 가슴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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