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바람소리에 잠이 깼다. 잠에서 깨어 핸드폰을 보니 강풍주의 재난 문자가 연신 온다. 이런 바람에 불이라도 나면 큰일인데...라는 생각을 하며 분주하게 아침을 차렸다. 아침내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고 더 심하게 불어댔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얼마 후 강풍으로 일찍 귀가시킨다는 학교 문자를 받고 나도 일찍 조퇴를 하였다. 집으로 오는 길 연신 소방차 소리가 들리고 신호등 걸린 건너편에서는 담벼락이 무너졌는지 경찰들이 지키고 서있다. 집에 와서 다른 피해는 없는지 혹시나해서 지역맘카페에 들어가 보니 여기저기 소식이 빠르게 올라온다. 청초지구대 정류장은 유리창이 깨져 위험하며 D아파트는 장기간 외출한 가정에서 유리창을 닫지 않아 밤새 유리창이 깨지면서 유리잔해가 날려 아이와 박스를 뒤집어쓰고 아파트를 지나왔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뉴스는 강릉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아, 이 바람에 불이라니!! 몇 년 전 고성속초 산불을 겪은 터라 안타까운 소식에 맘이 타들어간다.
2019년 4월 4일 밤, 고성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설마 불이 내가 살고 있는 속초시내까지 올까 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은 더 거세지는 듯 교동 쪽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 대피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단톡방에 톡이 왔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한꺼번에 대피차량들이 몰리면서 차가 막혀 난리도 아니란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거실에서 계속 아파트 주방 쪽 베란다로 내다봤다. 불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선 시댁에 전화를 넣었다.
"어머니, 아버님이랑 준비하고 계셔요. 아무래도 대피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어머님은,
"아버지가 뭔 난리냐고 한다, 대피 안 하신다는데 어쩌냐?"
"어머님 우선 집으로 갈게요."
아이들은 우선 집에 있으라 하고 남편과 시댁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아버님께서 대피를 안 하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옥상에서도 불길이 보이기 시작하니 막무가내로 얼른 옷 입으시라고 하고 겨우 설득해서 우리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 집 쪽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태워 우리는 양양 시누집으로 갔다. 우선 시누가 하는 식당방에서 하룻밤을 보내자고 했다. 평소에는 12시가 넘은 시각 차량통행이 뜸한 도로인데 우리처럼 양양으로 나가는 차량이 많았고 또한 반대차선에서는 타도시 소방차들이 연신 속초로 들어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주유소 근처까지 불이 번져 엄청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소방관들이 주유소를 지키느라 밤새 애쓰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녘 출근은 해야 하기에 상황을 살피러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다행히 불은 진화를 마쳤다고 한다. 속초로 다시 돌아와 시댁에 부모님을 내려드리고 시내를 지나오는데 매캐한 냄새와 잿빛 하늘이 지금도 기억에 잊히지 않는다. 마치 영화에서 본 전쟁이 끝나고 난 폐허가 된 도시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불이 주는 무서움을 몸소 느낀 날이었다.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방금 전 내린 소나기가 강릉에도 퍼주어 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부디 강릉산불이 빨리 잡히고 인명피해도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