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늦은 독립일기

--이혼 후의 나의 삶의 시작

by 박상희

나는 1남 2녀 둘째였다.

딸 둘에 아들 하나의 둘째 보통 그러면 둘째가 많이 천덕꾸러기처럼 자랐을 거라 예상하지만 나는 아빠의 이쁨을 많이 받았고 어려서부터 잔병 치례를 많이 해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그래서 식구들의 보호를 많이 받던 아이였다. 남들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고 그냥 평균 수준을 유지하면서 때 되면 대학교 가고 사회생활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 내조하면서 살아야지 했던 게 꿈이었던 아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그 순서대로 흘러갔던 거 같다....

아이 셋을 낳고 애들 아빠는 해외로 잦은 출장을 갔고 멀어질 것 같지 않았던 부부사이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나빠져 갔다.. 그러는 사이 3개월에 13Kg 이빠지고 나의 자존감은 밑으로 하염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나는 설득도 해보고 화도 내보고 내가 할 수 있은 것을 다했다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생각이 들었을 때 이혼에 동의했다..

더 이상은 행복할 거 같지 않은 결혼생활 내가 피폐해져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 이혼을 하면서 내가 정한 목표는 독립이었다.

10년 이상의 경력 단절의 기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 일지에 대한 고민

우선은 내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일을 해보자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아르바이트였다.

첫 번째 아르바이트를 구해보자!!!!

나는 우선 주부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봤고 그 당시 막내가 어렸기 때문에 시간에 제약이 있어서 아이를 픽업할 수 있는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우선 신청을 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보러 오라고 했고 운이 좋았는지 아르바이트를 바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을 시작으로 독립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두 번째 한번 부딪쳐보자!!!!

아르바이트를 4달 정도 했을 때부터 이혼을 하려면 양육비와 아르바이트비 만으로는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을 양육하길 원했고 어느 누구 하나 나와 떨어져 생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잦은 장기출장으로 이미 2년 가까이 나 혼자 키운 거나 다름없어서 아이들은 친가에 보낸다거나 아빠한테 키우라고 하는 건 나 자신이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한번 이력서를 내봐 어디든

이렇게 말해준 게 용기가 되었는지 나는 집 근처 차로 다닐 수 있는 거리까지 이력서를 되는대로 넣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자 제조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고 운 좋게 붙었지만 회사가 내가 생각했던 회사와는 너무 달랐고 텃세도 너무 심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원했는데 너무 힘든 2주의 시간을 보내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한 나는 그만두고 다시 이력서를 넣게 되었다. 한번 이곳 저것 넣어보고 면접을 보니 이것도 용기가 많이 생겼던 것인지 그만두고 3군데에서 면접을 보라고 연락이 왔고 3군데 다 합격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작은 회사들이었지만 경력단절 10년 이상된 아줌마를 써주는 게 어디냐

고맙다는 마음으로 첫회사에 발을 디뎠다....

세 번째 이혼의 독립은 무엇일까????

나는 이혼을 하면서 나 스스로 다짐했던 말이 있다.

아이들에게 이혼 전 환경과 이혼 후 환경의 차이를 만들지 않겠다...

적어도 경제적으로 아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이 있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거

아이들이 돈 때문에 뭔가를 포기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거였다...

나의 이혼의 독립은 그랬다. 집과 차와 회사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어느 하나 흐트러짐이 없어야겠다는 것

나는 이혼 후 진정한 독립을 이뤘을까???? 아직은 진행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네 번째 아이들을 독립시키자!!!!!

이 말은 아이들을 나에게서 떨어뜨린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육아의 목표는 아이들을 사람으로 온전히 독립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전업 주부이기만 했을 때와 일을 하는 엄마는 다를 수밖에 없다...

처음엔 이 부재를 느낄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이혼 후 한 3년 동안은 정말 여행을 많이 다녔다. 아이들의 감정을 보듬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여행을 다니고 당일치기도 마다하지 않고 멀리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이 셋과 차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소리를 지르고 휴게소에 들러 먹방을 하고 가는 길에 이쁜 곳이 보이면 머무르고 아이들도 서서히 밝아졌다. 날씨가 좋을 땐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공원을 산책하며 감정을 물어보고 대화를 많이 했다. 그리고 일하는 엄마를 도와주지 않으면 엄마는 일을 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 했고 전자레인지 사용법 인덕션 사용법 자기 방 청소 등의 집안일을 나눠하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아이들은 잘 따라와 주었고 지금은 나는 잔소리는 가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아이들의 모습이 고맙기만 하다... 아직까지도 아이들의 독립은 진행 중이다...

아직은 진행 중인 나의 늦은 독립....... 아이들과 같이 커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