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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Feb 02. 2022

명절증후군, 지혜롭게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글쓰기의 효과

끝났다.



아니 기어코 끝나버렸다.

주말을 낀 설 연휴, 무려 4박 5일의 황금연휴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야 말았다.


사실 이런 꿀 같은 연휴는 시작과 끝이 가장 무섭다.


연휴 시작 D-1


퇴근 시간 10분 전부터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잡아놓기 위해 다리를 덜덜 떤다. 마치 스타트 신호를 알리는 총성을 기다리며 트랙 안에서 바짝 긴장한 우사인 볼트의 심정도 이와 같을 것이다.


연휴의 시작



연휴의 시작!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선다. 하지만 이내 곧 우울해진다. 어차피 눈 감았다가 뜨면 달콤한 연휴도 곧 끝날 거라는 학습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휴는 시작부터 두렵다.

이미 시작도 전에 일분일초의 낭비도 없이 빼곡히 세워둔 연휴 계획. 그 사이를 헤집고 두려움이라는 놈이 징그러운 머리를 들이밀라치면 이내 고개를 세게 휘저으며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이 빌어먹을 두려움에게 내 연휴의 1초도 내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생각지 말자!'라며 설레는 맘으로 연휴를 온몸으로 받아들였지만 결국 그놈은 온다. 오고야 만다.


연휴의 


마지막 해가 진다. 맑았던 하늘에 스멀스멀 회색에 가까운 푸른빛이 스민다. 마지막 날의 해가 잿빛 하늘 끝에 걸려 뜨겁게 발악한다.



그렇다. 잘 알겠지만 이때가 가장 무섭다.

마음 같아서는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 사다리라도 타고 올라가고 싶다.

"넌 이제 끝이다."라고 비웃는 듯한 지는 해의 머리끄댕이라도 잡고 늘어서서 아직 아니라고 이렇게는 못 보낸다고 악을 쓰며 울고 싶다.

종교는 없지만 하느님이라도 부처님이라도 알라신이라도 예수님이라도 찾고 싶어 진다. 이 찬란하게 잔인한 연휴를 허락하심은 필히 괘씸한 인간을 벌하기 위함이시리라.


 밤의 끝을 잡는 방법들

사람은 각양각색이다. 같은 환경에 놓여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말이 좋아서 그렇지 조금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최후를 맞이할 때 꿈틀대는 방식에도 개성은 있다.


1. 현실 부정형



어떤 이는 내일을 부정한다. 최고의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엊그제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듯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면 정말 내일이 없을 것만 같다. 일단 목구멍에 알콜을 때려 붓는다. 맨 정신으로 버티기엔 이 시간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이 성스러운 전쟁에 참전할 동료를 찾기 위해 해가 질 때 즈음 여기저기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린다. 혹여라도 누군가 "내일 출근해야지... 다음에 마시자..."라며 찬물을 끼얹으면 마음이 더욱 조급해진다. 그렇게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 보면 다섯 차례 이내에 분명 한 명은 얻어걸린다. 후줄근하게 추리닝 바람으로 패딩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는다. 운동화를 구겨신고는 좀비처럼 발을 질질 끌며 술집으로 향한다. 취하려고 마시지만 쉽게 취하질 않는다. 그래서 더 마신다. 결국 취객이 된다. 물론 내일은 온다. 숙취와 함께.


2. 자진납세형



최후통첩을 알리는 명세서를 받기도 전에 누군가는 자진납세를 한다. 남은 연휴를 기꺼이 반납하고 어디까지 했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내일 해야 할 일을 한다. 체념이다. 그냥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두려움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효과는 보장한다. 하지만 장담컨대 더 불안해진다. (나도 다 해봐서 하는 말이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연휴증후군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날에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던가! 어차피 마지막 날 저녁에 일을 해봤자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매듭짓지도 못할 일들을 벌려만 놓고 결국 끝나기 일쑤다. 빨리 맞는 매가 덜 아프다고? 아니다. 똑같이 아프다. 그냥 먼저 아픈 거다.


3. 현자형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소개하겠다.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

바로 글쓰기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방법들은 필자가 이미 다 경험해본 방법들이다. 그 외에도 별의별 방법들을 다 동원해봤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것은 연휴 마지막 날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별거 없다. 연휴 동안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고, 어떤 것을 먹었으며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를 일기처럼 쭉 쓰는 것이다.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들을 곁들여서 쓰면 좋다. 추가로 다가오는 날들에는 어떤 일정들이 있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리해본다. 팁을 드리자면 업무적인 스케줄만 리스트업 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보상의 차원에서 다가오는 주말에 누구를 만날 것이고 어떤 재미난 것들을 할 것인지를 함께 적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비단 필자만의 근거 없는 노하우나 미신이 아니다.


미국의 텍사스 대학교 페니베이커(Pennebaker) 교수는 치유의 글쓰기를 연구한 대표적인 심리학자이다. 1997년에 그가 발표한 '정서적 경험에 관한 글쓰기의 치료적 효과'라는 논문에서는 우울감, 분노감, 실망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글쓰기를 하면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감정이 요동칠 때 이를 글로 표현하면 우뇌와 좌뇌의 뇌파 활동이 밀접하게 연계되며 문제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정신상태에 도달한다고 한다. 바로 감정의 정화, 카타르시스다.



그러니 연휴의 마지막 날이면 따뜻한 차를 한잔 내어놓고 차분히 앉아 글을 써보자.

물론 연휴 동안 기름진 음식과 알콜로 인하여 온몸의 세포조직 사이사이에 낀 기름 찌꺼기들을 게워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마음에 남아있는 부정적인 찌꺼기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담컨대 적어도 미련하게 술을 먹고 뻗는 것보다는, 혹은 내일 할 일을 오늘 미리 벌여놓는 조급한 어리석음보다는 100배 아니 1,000배는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여전히 불안하다면?

걱정하지 말라. 내일이면 아무렇지 않을 것임을 잘 알지 않는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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