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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Jun 16. 2019

미생에서 완생이 되기 위한 글쓰기 방법

회장님의 글쓰기_강원국

한줄평

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이 땅의 모든 신입사원들에게 일독을 적극 권한다.


서평

유시민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글쓰기에 대해 말하자면 전 세계적으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유시민, 강원국이라는 양대산맥이 있다.


  비유하자면 유시민 선생의 글쓰기 방법론은 사령탑 위에 전장을 쏘아보는 장군과도 같은 느낌이다. 잘 짜인 비단 도포에 반짝반짝 빛나는 철갑옷을 두른 모습. 허리춤에는 오색 보석이 박힌 명검이 있고 멋지게 장식된 철갑 투구 끄트머리에 걸린 붉은 술이 풍성하다. 위엄이 있고 정갈하다. 평시에는 선비처럼 고고하지만 전시에는 위엄 있는 장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 유시민 선생의 글쓰기 방법론이다.



  반면, 강원국 선생의 글쓰기 방법론에서는 야전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난다. 산전수전 이 전장 저 전장을 발로 누비며 흙먼지를 달려온 모습이다.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전투에서 몸소 살아남으며 흙먼지와 피를 뒤집어쓴 떼 묻은 장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마디로 강원국 선생의 글은 생존을 위한 방법론이다. 그의 글에서는 그렇게 흙냄새와 피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무엇이 더 좋다는 의도를 숨겨놓은 묘사가 아니다. 그저 글에서 묻어나는 느낌일 뿐이다. 강원국 선생의 글을 생존을 위한 글이라고 말한 이유는 아마도 그의 이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원국 선생은 대우그룹, 효성그룹, 제너시스템즈, KG케미칼에서 다수의 회장과 사장단을 모시며 글을 통해 그들을 보필하는 일을 해오셨다. 사원부터 임원에 이르기까지 샐러리맨의 애환과 삶의 현장이 글이라는 매개로 이어져왔다. 어디 그뿐이랴 2000년에서 2008년에 이르기까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에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민과 국가를 대상으로 한 글을 써내려 왔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말 그대로 '실전 글쓰기'인 것이다.


삶의 절반 이상이 글쓰기

 

  사실 우리의 삶은 글쓰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인간이 문자를 발명하여 문명을 만들어온 역사를 보면 이는 자명하다. 글쓰기가 있기 전에 말하기가 있었고, 말하기가 있기 전에 생각이 있었다. 인류는 각자의 생각을 타인과 말 (음성언어)을 통해 나누면서 집단생활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글 (기록 언어)을 통해 지식과 생각이 세대를 넘어 반영구적으로 전달되었고 문명이 발전해왔다. 글쓰기는 결국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생존의 도구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현장은 글쓰기가 절반 이상이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직장과 학교에서 읽고 써낸 글이 얼마나 되며,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에 SNS와 인터넷 혹은 책을 통해 읽은 글은 또 얼마나 되는가? 

더욱이 우리가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샐러리맨이라면 회사라는 조직에 맞는 글쓰기는 분명히 있다. 이걸 잘하면 회사생활이 보다 편해질 것이고 이걸 못하면 궁극적으로는 집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은 너무도 뻔하다.


  그러니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생존의 문제이다. 제 아무리 글이 싫다한들 때려죽여도 글은 계속 읽고 써야만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글을 써야만 생존이 가능하며, 글을 잘 쓴다면 생존에 훨씬 유리한 무기를 가지는 것이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보라. 우리 주변에 글을 꽤나 잘 쓴다는 사람이 한 명쯤은 꼭 있다. 그들이 얼마나 삶을 더 편하게 사는지를 생각해보라. 그래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이메일 받은 편지함 글들을 쭉 읽어보라. 그리고 각각의 이메일을 보낸 발신자들을 나열해보라. 그들 중 일을 잘한다고 정평이 나있는 사람들의 글을 다른 사람들의 글과 비교해보라. 그 차이가 명쾌하지 않은가?


회사생활에서의 글쓰기 생존법: <회장님의 글쓰기>

  그런 점에서 강원국의 <회장님의 글쓰기>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우리의 직장생활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신입사원일 때 읽어야 그 효과가 증폭된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고 글쓰기를 '제대로' 연습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누적될수록 실력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회장님의 글쓰기>는 글쓰기에 대한 일반론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사내에서의 처세술을 망라하고 있다. 가장 좋은 글은 경험에 기반한 글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원에서 임원까지, 그리고 회장을 직접 보좌하는 비서실의 상무로 임했던 강원국 선생의 <회장님의 글쓰기>는 좋은 책일 수밖에 없다.


글쓰기는 학습이 가능한 영역인가?


  종종 글쓰기 관련 책을 주변에 소개하면 시큰둥한 반응이 절반 이상이다. '그걸 읽는다고 내 글이 나아질까?', '글쓰기가 배워서 되는 것이면 전부 다 작가 하겠다.'는 둥 시니컬한 피드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 치고 본인의 글쓰기 철학이나 글쓰기 방법에 대한 프레임이 갖춰져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그리고 글쓰기도 예술적 영역이 아닌 이상 배우면 발전한다. 뱅뱅 돌아갈 수 있는 먼 길 대신, 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을 알려주겠다는데 왜 모른척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글쓰기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방향과 방법을 알면 목적지에 더욱 빨리 도착할 수 있다.



글쓰기는 재능이다?


  앞서 말한 부류의 부정적인 사람들 중 99% 이상이 재능론을 운운한다. 그렇다면 정말 글쓰기는 재능의 영역인가? 사실 현재 자신의 상태를 변명하기에는 '재능론'에 기대는 것만큼 탁월한 것이 없다. '난 원래 글을 못써. 재능이 없기 때문이지.', '그 사람은 타고났어. 재능이 있는 거야.' 혹여 이런 류의 말을 자신이 뱉고 있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우선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내비치듯 모든 영역에서의 천재들은 재능이 아닌 연습의 결정체였다. 두 번째로 설령 재능이라 한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는가? 재능론을 믿는다 해도 글쓰기가 생존을 위한 필수영역이라면 손 놓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이를 악물고 연습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분명한 것은 학습의 양이 누적되면 반드시 개선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재능론을 운운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삶의 전략이다. 이는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다시 말해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평하는 저명한 작가들의 말들을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 나탈리 골드버그-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동이다. -존스타인 벡-
글 쓰는 것은 쉽다. 그저 혈관을 열고 피를 흘리면 된다. -레드스미스-
글을 쓰고 싶다면, 정말로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넘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알레그라 굿맨-
작가라면 그 누구든 결국 빈 공책이나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문장을 떠올리기 위해서라면 방망이로 자기 머리라도 내려쳐야 하는 것이다. - 오클리 홈-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토마스 만-
양이 곧 재능이다. 재능에 자신이 없다면 양으로 승부하자. -나카타니 아키히로-


그들의 뼈를 깎는 노력을 단순 재능이라고 폄하하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뺨이라도 한 대 올려 치고 싶어 지지 않겠는가?


<회장님의 글쓰기>, 누구에게 추천하는가?


  결론적으로 이제 막 회사생활을 시작하려는 신입사원들, 그리고 글쓰기 때문에 지독한 월요병을 앓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이 책을 일독할 것을 적극 권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저 그릇을 만드는 것일 뿐이다. 그 그릇 안에 무엇이든 채워 넣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 책을 통해 방법론을 익히고 방향을 잡았다면,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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