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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May 27. 2019

번역판에서 누락된 내용_연금술사_파울로코엘료

연금술사_파울로코엘료

  세기의 거장 파울로 코엘료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소설가이다. 특히 그의 이름을 세간에 널리 알리게 된 책은 단연 '연금술사'가 아닐까 싶다. 1988년에 출간된 이 책은 12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2,000만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된다. 특히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서재에 한 권씩은 꼽혀있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니까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브라질 출신 작가로서 원서는 포르투갈어로 쓰여졌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연금술사는 프랑스어판을 중역한 것이라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되도록 영문판으로도 읽어보았으면 한다. 우선 동화같은 소설이기에 비록 버겁긴 하더라도 영문으로 읽는 것이 다른 책들보다 훨씬 수월하다. 언어라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는게, 같은 메시지라고 할 지라도 그 메시지를 담아내는 그릇인 언어가 달라지면 그 맛이 각각 달라진다. 같은 내용일지라도 해당 언어가 지니고 있는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에 의해서 맛이 달라진다. 똑같은 홍차여도 프랑스식 찻잔에 담겨있을 때와 투명한 글라스에 담겨 있을 때 그 맛이 다르듯 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판 연금술사의 번역본에는 책의 Introduction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어판과 영문판의 Edition이 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영문판에 나와있는 Introduction에서는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잘 설명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한글로 번역해보았다. 직역을 하면 이상하게 내용이 변질되는 부분이 있어서 의역을 하거나 생략한 문장들도 있다. 아무튼 아래 내용을 한국어판 책을 읽기 전에 한 번,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또 한번 읽어보길 권유한다. 그리고 한국어판을 다 읽고 나서 영문판으로 원문을 다시본다면 새로운 느낌의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Introduction

 

  출판업자인 하퍼 콜린스에게 받았던 편지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는 "'연금술사'를 읽을 때면 마치 모든 세상이 잠들어 있는 어느 새벽 밝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이 책은 영어로 출판되어야 한다!" 그당시의 나는 작가로서 책을 널리 출간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변에서는 허황된 꿈이라고,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조금씩 그리고 아주 조금씩, 나의 꿈은 현실이 되어갔다. 10부에서 100부, 100부에서 1,000부, 백만부의 책이 인쇄되어 미국에서 판매되었다. 한번은 브라질의 한 언론인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클린턴 대통령이 나의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고 이야기해줬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내가 터키에 있을 때 나는 Vanity Fair라는 잡지를 펼쳤는데 줄리아 로버츠가 나의 책을 추천하는 내용이 나와있었다. 마이애미에서 홀로 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소녀가 어머니에게 "'연금술사'를 꼭 읽어보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이 책은 45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2천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이런 대작을 통해 성공한 비결이 무엇인가요?" 나의 솔직한 대답은 이거다.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알고있는 유일한 것은 산티아고의 한 양치기 소년처럼 우리 스스로의 내면의 소리로서 '자아의 신화'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의 신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의 축복을 말한다. 다시말해 신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낸 삶이 이유를 따라서 살아내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만약 열정에 가득 차서 어떤 일을 한다면, 이는 곧 '자아의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거대한 자신만의 꿈을 직면하고 이에 맞게 살아가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왜일까?


  4가지의 장애물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첫째,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들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세월이 쌓이면서 편견과 두려움과 죄의식이 우리의 삶을 차곡 차곡 뒤덮어왔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자아의 신화'는 우리 영혼 속에서 점점 더 깊게 파묻혀가고 보이지 않게 되어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자아의 신화'는 우리 내면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 


  만약 우리가 용기를 가지고 그 꿈을 발굴해내려 해도 두번째 장애물이 가로막을 것이다. 그 장애물은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꿈을 위해 나가는 과정에서 주변의 누군가가 상처입을까봐 두려워한다. 우리는 '사랑'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진정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긴 여정 속에서 행복하길 원할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의 추동력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세번째 장애물이 가로막는다. 이는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분명히 꿈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사실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은 이런게 아니었어!"라는 흔한 변명 뒤에 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아의 신화'를 따라가는 삶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길이기에 다른 어떤 길보다 어렵고 험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진정으로 '자아의 실현'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 길을 떠나는 전사여, 부디 인내심을 가지고 좌절스러운 상황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그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온 우주는 우리가 꿈꾸는 삶을 살아가려할 때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과연 실패는 꼭 필요한 것인가?" 음,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꿈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실패는 분명 있다. 우리가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을 때에는 경험도 없을 것이며, 그래서 많은 실수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중요한 비밀이 있다. 바로 7번 넘어져도 8번째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고생과 고통을 경험하면서까지 '자아의 신화'를 따라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이유를 말하자면,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설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극복해낼 때 내면 깊숙한 곳에서 기적과도 같은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삶을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매시간이 이렇게 멋진 싸움의 작은 한 부분들이다. 처음에는 모두 열정과 기쁨을 가지고 그 여정을 시작한다. 


  사실 너무 강렬하고 예측치 못한 고통일수록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 되려 분명하게 견뎌낼 수 있는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몇 년간 지속되면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삶을 갉아먹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더이상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 끝내 고통을 떨쳐내지 못하고 남은 생을 힘들게 살아가게 된다.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면서, 사랑하고 수년간 상처받다가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꿈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를 기다려왔다고... 아마도 바로 내일이 그런 날일 수도 있겠다. 그러면 4번째 장애물을 맞딱드리게 된다. 그토록 온 삶을 바쳐서 얻고자 했던 그 꿈을 현실에서 맞딱드릴 때 느끼는 두려움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 모두는 스스로 사랑하는 것들을 파괴한다."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들이 쟁취하고자 했던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꿈을 이뤄내는 것에 대해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자책하곤 한다. 그동안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해내고, 수많은 고통을 견디고, 그 과정에서 포기해야했던 많은 것들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바보같은 생각 때문에 꿈을 다 이뤄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를 놓쳐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가장 위험한 장애물이다. 하지만 만약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확신하고 당신이 이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빛나는 도구로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리우 데 자니에로

2002년 11월

파울로 코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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