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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Sep 28. 2019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김상욱의 양자 공부>_김상욱_사이언스 북스

[과학을 증오하던 문돌이는 왜 <김상욱의 양자 공부>를 읽었을까?]

 

   나는 과학과 담쌓은 지 오래인 사람이다. 과학은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들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 분했다. 그래서 과학이 싫었다. 마지막 학기를 마친 뒤, 책거리를 한답시고 교과서를 찢어서 폐지함에 던져 버릴 정도였다. 이제는 과학과 영원히 안녕이라고 외치며 책을 집어던지던 나였다. 그런데 대체 왜 나는 이제 와서 과학책을, 그것도 물리학의 꽃이라는 양자역학에 대한 입문서 <김상욱의 양자 공부>를 집어 들었을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양자역학', '양자물리학'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양자역학은 그만큼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니, 알고 보면 양자역학은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All things are made of Atom.

-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사이언스북스, P8 -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해볼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몸은 원자로 되어있다. 그리고 핸드폰이건, 컴퓨터 화면이건 무엇을 통해 이 글을 접하고 있든 그것 또한 모두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양자역학, 양자물리학은 원자세계를 기술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와 외부세계 모두를 기술하는 학문인 것이다. 


    내가 이제 와서 양자물리학에 관한 책을 읽었던 이유는 단순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죽기 전에 '나와 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적어도 '양자역학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나의 언어로 직접 설명할 수 있었으면'하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양자역학, 양자물리학은 내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암흑의 세계였다. 그리고 <김상욱의 양자 공부>는 미약하게나마 그 영역을 탐험하기 위한 작지만 소중한 손전등 같은 책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구로 우리의 경험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일은 참 매력적이지 않은가?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
-리처드 파인만-

    알다시피 애석하게도 양자역학은 여전히 베일에 휩싸인 미지의 학문이다. 수많은 천재들이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평생을 바쳐 노력해도 풀지 못했다. 닐스 보어, 파인만, 하이젠베르크 심지어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모든 천재 물리학자들이 그랬다. 그런 양자물리학을 고작 일반인을 위한 교양 입문서 한 권으로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사실 고백하건대, 이 책을 완독 했음에도 양자역학, 양자물리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욱의 양자 공부>는 나 같은 사람도 책을 재밌게 끝까지 다 읽을 수 있게 하는 매력 있는 책이다. 그것 자체가 양자 도약인 셈이다.


[양자 전쟁의 시발점, 이중 슬릿 실험]


    본격적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기본적인 개념부터 살피고 넘어가자.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핵은 양전하(+)를 띠며, 전자는 음전하(-)를 띠는데 둘의 양이 정확히 일치하여 중성의 상태를 형성한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원자의 세계를 다루는 미시세계에 대한 학문이다.



이중 슬릿 실험은 양자 역학의 알파요 오메가다.

-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사이언스북스, p44 -


    '이중 슬릿 실험'은 양자역학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실험이었다. 간단히 살펴보자면 이렇다. 두 개의 슬릿에 입자를 쏘아 보내면 슬릿 모양으로 입자가 통과하게 된다. 하지만 물결 같은 파동을 흘려보내면 두 슬릿을 새로운 동심원으로 하여 두 개의 파동이 서로 겹쳐지면서 간섭무늬 형태로 통과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구멍을 두 개 뚫어 놓고 테니스공을 던져서 통과시키면 두 개의 구멍 중 한 곳만 통과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동시에 두 곳을 통과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반면에 두 개의 구멍에 물을 흘려보내면 동시에 두 곳을 통과한다. 

출처: 나무 위키 '이중 슬릿 실험'

여기서 놀랄 준비.


전자를 가지고 이 실험을 해보면 결과가 충격적이다. 실험을 관측하면 전자는 입자처럼 한 곳만 통과한다. 하지만 관측을 하지 않으면 물결과 같은 파동처럼 두 곳을 모두 통과하는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요망한 녀석 때문에 미칠 노릇인 셈이다. 향후 양자역학에 대한 모든 논의가 시작된 지점이 바로 이 '이중 슬릿 실험'이다. 요약하자면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살펴본 결과, 전자는 입자이면서도 파동인 이중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거장 닐스 보어는 이러한 성질을 '중첩 상태'라고 개념화했다. 이러한 이중 슬릿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다만 관측 혹은 측정이라는 행위를 할 때, 필연적으로 빛이나 전자로 인한 교란 상태가 발생하여 원자에게 영향을 미쳐서 중첩 상태가 발생한다는 '결어긋남' 개념이 다수의 물리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양자역학의 정통 이론인 코펜하겐 해석은 측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선 우주를 둘로 나눈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 거시 세계는 뉴턴이 만든 고전 역학이 지배한다. 하나의 입자가 하나의 구멍을 지나는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다. 미시 세계는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여기서는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지며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2개, 아니 수십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중첩 상태'라고 부른다. 측정(관측)은 거시 세계의 실험장치가 수행한다. 측정을 하면 미시 세계의 중첩 상태는 깨어지고 거시 세계의 한 상태로 귀결된다. 이 해석은 보어가 이끄는 물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내놓은 것이다. 당시 보어가 살았단 덴마크 수도 이름을 따서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른다.

-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사이언스북스, p46-

아무튼 이중 슬릿 실험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천재 물리학자들의 매서운 공방이 벌어진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과 파동역학으로 유명한 슈뢰딩거,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 코펜하겐 해석으로 유명한 닐스 보어와 행렬 역학으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약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양자물리학을 중심에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이 벌여져 왔다. 결론적으로는 이 전쟁에서는 명백한 승자가 아직 아무도 없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김상욱의 양자 공부>를 읽어보길 권한다.

191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다섯 번째 솔베이 회의에 참여했던 29명 중 17명은 노벨상 수상자들이었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김상욱의 양자 공부>를 통해 천재 물리학자들의 논리적 공방을 살펴보고 있으면, 인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풀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닐스 보어는 죽는 날까지 아인슈타인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원리가 틀렸다고 지적한 내용을 본인의 연구실 칠판에 그렸다고 한다. 

1962년 닐스 보어가 죽은 날, 그의 연구실  칠판에 남아있던 '아인슈타인의 상자' 그림

"대체 양자역학이 뭐길래 그들은 이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에 다다를 때쯤이면, 우주와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는 생각에 겸손해진다. 때로는 양자역학을 알면 알 수록 대단해 보였던 인간이라는 종이 그저 원자 덩어리라는 사실에 허무해지기도 한다. 양자역학은 굉장히 불편한 학문인 것이다.


과학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상식조차 의심해야 한다. 따라서 과학의 핵심은 합리적 의심이다.

-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사이언스북스 p114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의 발전과정은 인류 지성과 이성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과학의 발전과정은 진리에 더 가깝게 다가서기 위한 피나는 몸부림이다.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상식을 깨부수어야만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듯,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듯,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듯 과학은 끊임없는 부정과 자기 파괴를 통해 발전해왔다. 양자역학도 이러한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은 인류에게 놓인 또 다른 과제이다. 지금으로서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처럼 보인다. 실제로 양자물리학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과학으로 풀지 못하는 문제에 괴로워하다가 끝내 종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끝내 이 비밀을 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뜰 것이며, 야속하게도 세상은 너무나 잘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노력 자체가 인간을 원자 덩어리 이상의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는 우리가 양자역학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밝게 비출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자 한다. 어차피 삶은 믿음의 문제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을 원자 덩어리 이상의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김상욱의 양자 공부>에 소개된 내용의 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이 과학책 소개로 시작했지만 철학에 대한 소개로 끝날만큼, 이 책은 나 같은 문돌이에게도 커다란 가르침을 준다. 


마지막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로 끝내고 싶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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