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 결국 인간

키워드로 보는 세상 -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시빌 워:분열의 시대

by Heestory
불안과 공포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그럴만한 것인가, 조장된 것인가.

보험사는 인간의 불안으로 적문학적 수익을 올린다.

지금의 공포 조장은 또 어느 집단의 수익을 위해 조장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후 위기마저 불안 조장을 위해 사용된다는 주장이 반이다.

실제 내가 사는 작은 땅의 날씨 변화만 봐도 문제가 있구나 싶은 느낌이 들지만,

대중을 타겟해 불안을 조장해 실제 위기의 무엇이 얼마나 변할까.


정작 변화해야 하는 집단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세상은 강력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 의해,

그 집단에 속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선·공정·평화가 아닌 극단으로 달려가고 있다.



모름과 두려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상당하다.

본성이 나오는 걸까, 본성에 반하는 걸까.


인간들은 불안의 실체를 모르면 극한의 공포에 서로를, 결국 스스로를 공격하게 되는 듯하다.

그래서 인간을 이루는 구성물질에도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게 있는 걸까.


요즘 드는 생각 하나, 세상이 넓은 줄 알겠다.

그 모든 곳에 닿을 수 없음 또한 안다.


새로운 AI 에이전트가 나와 이제 좀 쓸만하면 내일 또 새로운 것이 나온다.

점점 더 빨라지고, 작업물의 퀄리티 또한 좋아지니

기존에 적응하던 것을 버리고 새로 갈아타기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지구는 아프고, 세상은 어지럽고, 인간들은 시끄럽고, 내 머릿속은 난장판이다.


난장판인 바닥에 더 많은 것들을 쏟아 넣으며

더 다양한 경험을 반드시 미지의 영역을 밟아가며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생각.


밖으로도 무한대로 확장이 되는 만큼

어느 작은 부분, 어떤 하나의 현상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원리가 담겨 있다.

그런 줄은 알지만, 그걸 알아내기 위해 몰입하는 것보다는

크고 시끄러운 것에 더 끌려다니게 된다.


잠시 조용히 한 발 물러나 잔잔하게 작은 것에 몰입해

원리를 이해하고 유기적인 이치를 알고 본질을 발견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발전과 자멸

발전할수록 스스로 자멸을 향해 가는 듯한 인간들…

방향을 어떻게 전환하게 될까.


이익을 위해 모르는 척하는 걸까,

나는 아니라 생각하는 걸까.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는 세상.

지구가 멸망 한다면, 원인은 인간이다.



인간윤리

전쟁은 선악의 충돌이 아닌 그저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다.

살아있는 것 중 유일하게 언어라는 것으로 소통을 하면서

듣지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뱉기만 하며 그에 동조하지 않으면 굳이 무기를 만들어 상대의 입을 닫는다.


전쟁의 역사라 봐도 될 인류의 역사를 보면

‘소통’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AI까지 일반 지능화되어 간다.

소통 불가의 존재가 만들어낸 생명체와 유사한, 그러나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


그것들이 인간을 뛰어넘으며 ‘소통’과 ‘이해’를 배우지 못한다면,

AI가 인류의 씨를 말리려 드는 영화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눈앞에 펼쳐질 수 있는 현실이지 않을까.


AI 윤리를 논할 게 아니라,

인간 윤리가 먼저인 듯하다.



The Thingking Game


중립의 부재

위태로워 보이는 문제는

순수한 열정을 최대로 발휘해 경이로운 솔루션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결국 자본에 의해 끔찍한 무기가 될 것만 같은 불안함.


순수한 천재의 머릿속에서 뿜어 나오는 세상에 없던 생각들.

그것이 무엇이 될 것인지, 분명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한 사람들.

그리고 돈이 될 것인가를 따져 투자하는 사람들.


세상에 없던 것을 위해 전력을 다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렇게 돈을 받아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면

사용자는 자본이다.

적당히도, 중립도 불가능한 걸까.



가장 중요한 가치

신뢰란 얼마나 위태로운가.

작든 크든 오랜 시간 신뢰를 지켜내는 인간은 그 자체로 대단하다.

얼마 동안 지켜냈든, 그 대단함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신뢰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가끔 신비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형체 없는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은

무엇보다 묵직한 듯하지만 돌연 실체 없이 가볍다.


보이지 않는 인터넷망처럼 세상 전체에 얽혀 있는 신뢰망이 붕괴된다면

그 시작이 어디든 인류 멸종의 버튼이다.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더니,

인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가 아닐까.



인생은주식

인생이 주식 같다는 말.

내가 바란다고, 기도한다고 되는 건 없다.

결국 갈 놈이 간다.


같은 두려움에도 침착하게 대처하든,

하는 것도 되는 것도 없이 아등바등 난치만 치든,

쫓는 놈이든 쫓기는 놈이든

결국 살 놈은 산다.


손에 잡힌 듯해도 이 세상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니

언제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다.


나는 쫓고 있는 걸까,

쫓기고 있는 걸까.



결국 인간

미래 전쟁의 모습인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미래라고 할 수 있겠으나

지금 당장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음이 불편한 지점이다.


미스트와 로스트가 생각나던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켜고,

함선처럼 밀려오는 불편함에

삼체나 어라이벌처럼 무언가 나타나지 않을까 했으나

영화보다는 현실이었다.


차라리 외계인이 나타났으면 좋았겠다 싶던 씁쓸한 전개.

결국 인간이 부른 인류의 종말이라니.

지금의 전쟁이라면, 이보다 더 소리 없이 스산하게 모두의 생명을 앗아가지 않을까...


아름다운 사슴 떼가 인간들을 지긋이 바라보던 장면은

스스로 종말을 불러온 그것들을 탓하지도,

그렇다고 불쌍해하지도 않는

“결국은 이렇게 되었구나.”라는 표정 같았다.


설마는 설마일 가능성.

설마가 결국이 되어 갈 때

모르면 음모, 알면 공포, 주도하면 권력인 듯.


멸종도 발전도 결국 인간이다.

나는 어디에 속해 어떤 인간이 되어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