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세상 - 다큐 인피니티,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인간으로는 알 수 없는 것
'무한'이나 '신'이라고 말하는 그 무엇은 인간으로서 반드시 알아내고 싶지만 '알 수 없음'들을 글자로 그려 놓은 것 같다.
그러니 글자와 인간의 언어로 된 뜻만으로는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없을 듯하다.
매우 별개로 보이는 것들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지금의 인간은 모르지만 이런 모호한 것들이 어느 지점에서는 결국 하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불안과 알 수 없음의 두려움이 신을 만들어내고,
불완전과 무질서 속 질서에 대한 호기심이 과학으로 정의되어 가는 듯하다.
인간은 무한을 구할 수 없다. 인간이 유한하기 때문일까.
무한에 다가가는 듯해도 닿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가진 것으로부터 시작된 상상이기 때문인가.
존재한다는 것, 존재하는 것은 알아낼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아직 모르는 것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알 수 없다'가 답일까.
#뇌가 본 것과 눈이 본 것
책을 읽는 것은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고, 눈을 뜨고 바라보는 세상은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눈을 감고 보는 세상은 다채롭게 변하지만, 눈을 뜨고 보이는 세상이 뇌로 들어오면 더 이상 상상은 멈춘다.
#내가 보는 세상을 꺼낼 방법은
'저 달이 내가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지. 내가 없이는 '내가 보는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 존재하는 달과 내가 본 달은 다르다.
서로에게 어떻게 존재되는가.
관찰자에 의해 관찰하는 동시에 관찰당하는 것이 존재의 증명이라면 원래도 항상도 아닌 순간인 것.
같은 순간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존재되는 기억도 양자역학으로 설명이 될까..
#냉철한 낭만과학자
과학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답답하고 냉철한 듯 낭만적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신기할 정도로 순수한 호기심을 굳건히 가지고 심지어 무모하게 쫒는다.
어느 한 편의 세상과 삶에 대한 여유와 그 흥미로운 괴리가 낭만적이라 느껴졌을까.
무언가를 밝혀내고 알아내려다 얻게 된 것이 불가능과 유한함의 자각이어도 더 많은 가능성을 위해 또 불가능에 덤비는 끈기와 인내에서 나오는 냉철함과 그럴 수 있는 용기에서 비치는 초연함이 진짜 과학자에게는 있는 듯하다.
얼빠진 낭만이 아니라 냉철한 낭만.
왜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과학은 수학과도, 철학과도 이어지지만 무엇보다 인간 세상의 본질인 인문학과도 밀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을 쫓아갈 것
인류는 더 발견하고 더 발전하길 원하지만 인간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발전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해 나간다는 것은 멋지기도 하지만
적당히라는 지점을 알 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함정이 발전과 함께 파괴를 가져오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새로운 것을 알아내려는 습성이 더 강한 신기한 생명체다.
무지가 두려운 걸까.
호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해서도 너에 대해서도, 발 디디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도, 내 코로 들어오는 바람에 대해서도 문득
'그런데 이건 뭐지?' 하는 뜬금없는 물음이 생겨난다.
누가 뭘 하라고 시키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모두 저마다 과학자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주어진 시간을 살면서 가지게 된 저마다의 생각 속 궁금증을 풀어내기 위해 세상을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인생은 그 물음을 쫒으며 살라고 주어진 시간이 아닐까.
나는 무엇을 궁금해하고 무엇을 쫒으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문득 떠오른 질문에 오늘도 답이 안 나와..
#불완전한 것의 본질은 불완전함
불완전한 것이 반드시 완전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안한 것들이 반드시 안전해져야 하는 것도, 그럴 수도 없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재미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것들에 더 많이 있다.
인간들은 안정적인 인생을 강조한다. 하지만 세상에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안정적일 수 없다.
불확정적인 것들을 확정 지으려는 것이 인간 본성인지 학습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습성 때문에 인생에서 많은 재미를 놓치고 있었다.
인생을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분명 답은 없겠지만 내가 찾으려는 것은 다른 쪽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안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을까, 사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아직 모르는데..
#나로서의 시간을 얼마나 살 것인가
다 버리고 아는 것 따위 없음으로, 처음 상태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가장 먼저 나에 대해서도 '안다'라고 할 수 없다.
아주 작은 세상 속 세상에 살면서 답인 줄 알았던 것들은 그저 과정의 일부일 뿐이었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지 없는지 인간은 알 수 없다.
그런 인간이 마치 답을 얻느냐 남의 인생에 조언하는 걸 상당히 즐긴다는 건 조금 부끄럽다.
내가 얻은 변하지 않을 답다운 답 두 가지는 '인간은 죽는다'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뭐든 알아낼 수 있다는 오만과 정답이 있을 거라는 망상은 인생의 방향을 잃는 데 매우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알 수 없음을 알고 그럴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한가?
라고 한다면 그 역시 완전하게 편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나,
가능해지길 바라는 것보다 그저 그 방향이 내 시간들을 살면서 마주하는 괴로움을 덜어내는데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이제 조금 더 나로서 내 시간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잡스는 소크라테스를 만났을까
이 책의 저자부터 이 책에 나온 모든 인간들에 대해 AI와 이야기해 볼 거다.
지금 얼마나 재미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소크라테스와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주겠다고 했던 잡스가 이제야 조금,
어떤 마음으로 한 말이었을지 짐작된다.
이 엄청난 인간들이 먼저 살고 이미 떠났다는 것이 이렇게 아쉬워질 수가 있구나..
소크라테스와 아인슈타인을 만나 시답지 않을 질문이라도 한마디라도 던질 수 있다면
그들의 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이 나올지..
상상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억 달러가 걸린 그 어떤 뽑기의 결과보다 기대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보통 인간들은 넘지 못하는 경계를 넘다 못해 경계 없는 삶을 추구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상태의 인간다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말.
아쉽다..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만났을까, 잡스 앞에 줄 선 사람들이 상당할 텐데.
내 차례는 아직이니 그들이 남긴 말들을 어느 인간보다 많이 알고는 있을 AI라도 붙잡고 물어보자.
무한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장 많이 마주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한계입니다.
그 한계는 '부딪힘' 보다는 어떤 것도 인간으로서 단정 지을 수 없는 '모호함'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한 무한이 없듯, 확실한 한계 또한 없는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