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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10. 2023

고통의 잔상

 공포 없이 도전 없이 나 없이 무중력

직접적으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직접적 가치를 지닌 듯 여기는 어리석은 행위를 '허영'이라고 부른다. (중략)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서 가장 신경 쓰는 일은 다른 이의 생각이다. - 쇼펜하우어 소품집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권위라는 걸 알아채면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걸 알아채기도 전에, 내 자아를 흔드는 0.1초도 채 안 되는 그 순간에 폭풍같이 나를 쏟아낼 때가 있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덫에 무작정 엎어져 피 흘리는 순간은 생각보다 꽤 오래 고통스러운 잔상으로 남는다.


모든 것을 다 들어 올리고 다 까뒤집어 보여야 직성이 풀리는 시간들, 더더욱 권위에 도전하면 안 된다. 허영으로 치장하고 서로 웃으며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의 시간을 구경만 하는 참을성이 왜 없었던가. 이 바보 같이 한심한 나는 흔들리는 영혼을 가장 작게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두려움에 떤다.


그. 런. 데. 왜 떨어야 하지? 가장 나다운 때였는데 말이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나의 방식이었는데 말이다.


겉치레 삶, 속이는 시간, 위안하는 비웃음, 손뼉 치는 위선, 목적 잃은 가치, 아름다운 비수, 상처를 소금에 절이면서도 웃어야 하는 시간들, 모두 내가 상대해야 할 세상의 돌이리라.


무심한 유희에 한번 죽어주고, 살얼음 같은 자존심에 두 번 죽어주고, 무중력에 나를 가두고 문을 닫는다. 당분간 내 영혼을 수리하는 기간, 폐업과 다름없는 나의 개점휴업이다.


내 삶, 눈치 보는 허영을 허락하지 않겠다.



#라라크루 #라라라라이팅 [금요 문장스터디] 허영은 허접스러운 영혼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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