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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26. 2023

이쪽이에요

2023 김종철 시(詩) 낭송 대회 후기

'이쪽으로 나가세요!' 나의 한라산 당일 산행 같은 어제가 가리킨다. 지루하고 귀찮은가. 일어나서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나가 걷는다. 새롭게 하고 싶은 가슴 뛰는 것들을 만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내 방식의 삶에 꽤 만족한다.




마음이 기우는 시간을 무시하지 못한다. 정치적 꼼수로 비칠 수도 있는 약속을 과감히 깨고 글 쓰는 아이에게 톡을 날렸다. 시(詩)에 관심 있는 거 같아서 연락하는 거야. 데이트할까. 스케줄 되면 알려주라.


안되면 그뿐이리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으니. 그럼 나는 혼자 산행을 하듯이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아이의 '좋다'는 메시지는 내 세상의 색깔이 새롭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토요일 내가 좋아하는 한강을 지나갔다 되돌아오는 그 시간들, 차 안에서의 가볍거나 진하거나 신중하거나 묵직한 대화들과 웃음과 미소가 같이 피어나는 깨달음의 시간으로 채우며 나는 그 '글 쓰는 아이', 그 '생각하는 아이'라는 스승을 만났다. 


Exit this way! 이쪽이에요!


세상에는 시(詩)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산다. 성북구청 아트홀을 풍성하게 채운 사람들과 시(詩)에 빠진 세 시간 반이 내가 갈 방향을 가리킨다. 이쪽으로 나가세요. 삶이 더 풍성해지는 곳으로 한 발을 디디는 거다. 


열여덟 명이 낭송을 연달아하며 대회를 시작하는 풍경이 다소 빠르게 휙휙 지나갈 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음악 없이 단아하게 목소리의 공명으로만 전해오는 시가 새롭다. 


하지만 그 이후 낭송 경연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와 자신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릴레이로 낭송하는 것을 들으며 마음의 갈증이 다소 해소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애를 태워도 되는 건가. 몇몇 시를 들을 때는 울컥거리며 올라오는 주책맞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옆에 앉은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눈물샘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김종철 시인의 무게를 오롯이 이해한 감성으로 전달하려면 오래 김종철의 시와 같이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연륜 있는 낭송가들의 깊은 목소리와 떨림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마음의 온도가 수시로 변했다. 


심사를 위한 경연 사이의 두 개 특별한 공연은 몸을 흔들게 하고 마음을 벌떡 일으켜 세울 만큼 새로웠다. 퓨전 국악 공연 무용수의 몸짓이 주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고, 매니아 합창단이 전하는 김종철 시인의 시로 만든 합창곡이 온몸을 소름 돋게 했다. 사람의 목소리가 내는 화음에 정신을 놓고 오래 그 여운에 빠져 있었다.


아이와 나는 누가 결선에 올라갈지 둘이서 손가락으로 몇 낭송가를 뽑아두고 기다리다가 우리가 선택한 번호가 불리자 둘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 이런 게 대회라는 행사의 묘미구나. 결선자들을 두고 누가 김종철 시인상을 받을지에 대해 침묵의 손 대화를 하면서 가슴이 들떠 있었지만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세 시간 반의 대회는 짜임새 있고 아름다웠다. 대회를 같이 지켜본 아이의 직업이 의전 및 행사 담당이라 그런지 시상대를 세팅하고 상을 주는 부분에 대해 아쉽다고 했지만 일반인인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그저 이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 시 낭송대회라는 행사의 세부 진행이 가능할까 많이 궁금했기 때문에 전체와 세부, 숲과 나무를 번갈아 가며 왔다 갔다 마음속에 새기고 있던 중이었다. 내가 계속 앞으로도 이 김종철 詩낭송대회에 올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마무리 무대의 감동은 이 대회를 주관하는 대회 위원장이, 후원을 하는 (주)문학수첩의 대표, 김종철 시인의 아내를 무대로 모시고 소감의 시간을 가진것이었다. 위원장의 따뜻한 배려와, 고 김종철 시인, 그의 아내의 여전히 진한 사랑을 담은 목소리가 청중에게 잘 닿았으리라. 


사진 촬영을 끝으로 대회가 자연스럽게 끝나고 있었다. 끝까지 앉아 낭송가의 얼굴마다 시어들을 떠올려보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사회자에게도 감사의 눈길을 주었다. 


이 낭송 대회의 모든 세부 일정들을 멋지게 마친 대회 위원장, 이숲오 작가님께 축하드린다고 크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나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지인의 한 명'으로 소개하고 갔기 때문에, 온갖 장난기가 솟았지만 세상을 향해 정중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김종철 詩낭송대회에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같이 간 글친구, 나의 조카아이에게 선물한 이숲오 작가님의 책 '꿈꾸는 낭송 공작소'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금빛 사인을 받은 것에 흥분하며 우리는 기쁘게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은 온통 詩에 대한 이야기, 나의 조카아이가 스마트폰 메모장에 오래전부터 간직하며 읽었다는 김종철 시인의 '고백성사' 詩이야기를 했다. 


심사를 위한 시간을 내주는 동안 들었던 이숲오 작가님이 낭독한 김종철 시인의 시가 '고백성사'였다고 기억하는 아이에 놀라면서, 글 쓰는 사람들이 시작하는 세상의 다른 곳에서 서로 이어지는 점들을 나는 기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부터 '2024 김종철 詩낭송대회'를 차분히 기다려야겠다.



#라라크루 (2-1) #라라라라이팅 새로운 세상으로의 이정표를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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