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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an 10. 2024

하다 하다가

결국 나 자신에 공감하다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은 '심리적 참전'이라 할 만큼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당연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일이므로. - 정혜신 (2018, 당신이 옳다, p.303, 해냄출판사)


어디쯤 가고 있을까 라는 노랫말이 허탈하다. 네가 어디쯤 가든 말든 내 상관할 바 아니다.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이런 삼인칭 먼 비유로 그런 척 아닌 척하기도 싫다. 너무 지쳤나 보다. 나는 그대로 이 자리에서 멈추어 서서 내 흔적의 잔물결을 바라본다. 


정혜신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다른 말은, 의외로 폭력적인 '바른말'이라 했다. 오래전 마음을 쑤시고 들어온 이 바른말들은 내가 가르치는데 그리고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된 것들이다. 이 바른말들은 폭포처럼 다른 곳으로부터 한 순간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이치니, 나까지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를 살면 된다. 


가만히 들어주는 걸 참지 못하는 세상에서 귀를 크게 열고자 했지만 나도 여전히 먼지 같은 사람이라 나를 들어줄 사람을 찾곤 한다. 예민함이 불치병이라 내 고통이 건너가다가 멈칫 멈칫 되돌아오고, 너덜너덜 되돌아온 눈물과 허무는 켜켜이 쌓여 멍하다. 


내 숙명은 귀를 여는 건가 봐 하다가 다시 두리번거려 어딘가 나를 위해 열려 있을 수도 있는 귀를 찾는 이 우매함은 삶이 끝나야 끝나는 건가. 마음속에 머뭇거리던 단어들을 챙겨 글로 쏟으며 하나씩 정리해 간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그런 스스로 다독임의 여유는 남의 귀를 빌리지 않더라도 치유의 과정임을 안다.


내가 아파요, 곪은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내가 당신을 원해요, 마스터베이션 같은 실오라기 욕정까지 다 쏟아내지 않아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싶은지 차분히 정제된 고운 시선으로 말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한다. 여전히 1월이니 신년 다짐으로 유효하리라.


내가 잘하는 집중, 나를 기쁘게 하는 몰입, 내가 좌절하는 함몰과 어둡고 퀴퀴한 고독의 매몰이 번잡하게 반복되는 삶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길로 되돌아가지 않고 기쁜 꽃길을 보는 눈을 갖게 해 달라 나를 위해 어딘가 열려있을 수도 있는 귀에 대고 속삭여본다. 


집중하다 몰입하다 가고 싶다. 함몰하다 매몰하다 피하고 싶다. 글 쓰며 살아가는 나의 길이 사람으로 열려있으면 좋겠다. 그래, 그러자. 오늘은 나 자신을 공감하는 날이다.



출처 - 단어의 사전적 정의 by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응용

집중하다 -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붓다

몰입하다 - 깊이 파고들거나 빠지다

함몰하다 - 물속이나 땅속에 빠지다

매몰하다 - 보이지 아니하게 파묻히거나 파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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