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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an 09. 2024

욕조 안 단상

0576

생각들이 뒤엉키고 자리를 잡지 못할 때에는 욕조 안으로 들어간다.


전장에 나가는 전사가 몸을 풀듯 정종을 들이부은 온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오십 도 물에 몸을 담근다.


지친 세포들이 기지개를 켜고 물이 닿지 않은 머릿속마저 싱그러워진다.


클래식한 음악을 저만치 틀어놓고 차일피일 미뤄둔 모던한 아이디어를 주섬주섬 꺼내 욕조에 거품비누처럼 풀어놓는다.


둥둥 조각배같이 떠다니다 구체적으로 깊어지면 아이디어들은 날개를 펴고 천장 위로 날아오른다.


욕실 천장에는 수증기 사이로 피어오른 생각들이 별처럼 총종 박히고 제각각 손을 잡고 별자리를 그려낸다.


밝아도 빛나고 좁아도 웅장하다.


수증기가 별이 된 생각들과 만나 물방울 되어 내 콧잔등 위로 떨어진다.


캡슐이 터지듯 생각이 흩어지려는 찰나에 물 위에 기록한다.


욕조 안 물은 투명한 노트가 되어 받아 적는다.


중요한 대목에는 떠다니는 내 몸의 때가 밑줄이 되거나 괄호가 되어 표시하니 걱정할 것이 없다.


찰랑이는 물소리는 그때마다 저장되고 있다는 신호음이다.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물이 냉혹한 세상과 싸울 때 이따금씩 입는 갑옷이 된다.


https://brunch.co.kr/@voice4u/313


https://brunch.co.kr/@voice4u/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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