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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20. 2023

문장의 주름

0312

문장에도 주름이 있다.

굴곡진 삶의 흔적으로서의 주름이 아니다.

나와 세상 사이에 열리고 닫히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색종이를 접었다 폈다 했을 때의 자국처럼 주름이 생긴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세상인지

내면이면서 외연인 주름.

그러한 주름을 지니지 않고서는 문장으로 힘을 가지지 못한다.

경계 지을수록 명확한 자기 존재가 규정될 듯 여겨지나 사실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모든 비교의 문장들은 주름이 펴진 혹은 주름이 없는 상태다.

위태롭다.

그럴듯한 것들은 틀린 것들보다 더 위험하고 폭력적이다.

그럴듯한 자기 계발서의 방법제시들.

그럴듯한 스피치의 요령들.

그럴듯한 성공의 이야기들.

아예 명확하게 아니면 골라내기가 수월한데 그럴듯하면 스며드는 줄도 모른다.

주름이 없이 팽팽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더 유혹적이다.

늘 젊은 모양을 하고 싱싱한 채 박제되어 있다.

마네킹이 젊은 얼굴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까.

가짜는 스스로 그럴듯하다고 항상 친절하게 외치지만 수용자가 알아서 그렇다라고 선언해 준다. 고맙게도.

자신의 선택을 옹호하려는 본능은 밖에서 보면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진위 여부는 주름의 유무로 가늠할 수 있다.

주름이 있어서 보기에는 조금 거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유니크함이 된다.

진짜들은 경계에서 무수한 고뇌의 시간을 보낸다.

나만의 것만 고집하지 않고 세상의 낯선 것들과의 송수신을 하며 내 것들을 접었다 폈다 한다.

어떤 것들은 그 주름이 깊어져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역전시키기도 한다.

어디가 자연이고 어디가 건축인지 모를 수도 있다.

좋은 주름들 사이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가치를 드높인다.

문장에도 주름이 있다.

첨단의 정보만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인공지능의 생성기로도 생성해 낼 수 없는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문장에는 주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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