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Apr 21. 2023
모처럼 과음을 했다.
눈을 뜨니 어제의 내가 누워 있다.
내게 과음의 정의는 다르다.
마신 술의 양이 아닌 술의 혼합도가 절대적이다.
과음이 나쁜 건 숙취 때문이 아닌 듯하다.
그건 몸의 사건이니 시간이 흐르면 자정 될 터이나 내가 술기운에 쏟아낸 무수하고 무모한 말들을 어디서부터 수거해야 할지 그 고민이 두통스럽다.
술기운!
술이 내려준 가짜 기운과 용기는 그간의 잠들어 있던 거인을 깨워
그의 어깨를 빌리고
그의 주먹을 빌리고
그의 심장을 빌리고
그의 목청을 빌려 세상을 호령하듯 은밀한 분노들을 게워내듯 나발 불었다.
술은 자전거의 보조바퀴처럼 균형을 잡지 않아도 나를 넘어뜨리지 않고 신나게 나아가게 한다.
그것은 트릭! 착각! 환시!
술이 깨는 순간부터 거인은 사라지고 그 높은 곳에서 내동댕이 쳐진 나는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술이 위험한 건 알코올로 인한 간의 위협보다 높이가 주는 위치에너지가 더 크다.
술은 비상 후 낙하의 2차 사태를 무방비한 상태에서 발생시키기에 이것의 감당이 자주 금주를 다짐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마취가 풀리는 순간부터 고통은 재생된다.
어젯밤 취중진담은 오늘 현타의 마중물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운명에도 없는 편집기사가 되어 사라지거나 조각난 장면들을 교차편집 또는 삽입, 삭제, 반복재생한다.
그 어디에도 나를 위한(위로하는/유리한) 장면은 없다. 아뿔싸!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자고 웅변한 나의 입을 청테이프로 칭징 감는다.
숙취해소제를 투입하기 위한 작은 구멍을 뚫기 위한 연장을 찾는다.
젓가락이 좋을까.
어릴 적 목욕탕에서 마시던 삼각형 커피우유가 생각났다.
비닐용기로 되어 있어 빨대로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단번에 뚫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이때의 요령은 이러하다.
우유가 새어 나올까 공기층이 있는 곳을 찌르면 빨대는 어김없이 고꾸라지듯 구부러진다.
과감하게 우유가 출렁이는 그 부분을 겨냥해야 안전하게 빨대는 우유와 만날 수 있다.
우리네 삶과도 닮은 우유에다 빨대 꽂기다.
갑자기 삼각형 커피우유가 먹고 싶다.
귀퉁이를 자르지 않고 빨대를 직접 꽂아 마시고 싶은 아침이다.
음주가 끝나고 난 뒤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보다 내면이 더 어수선하다. 주변도 어수선하고 뇌도 어수선하고 글도 어수선하고 속도 어수선하고 카톡도 어수선하고 감각도 어수선하고 기억도 어수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