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Apr 22. 2023

불안을 염려

0314

불안 없이 살아가는 이가 있을까.

어제의 불안은 어제 나름대로 어울렸고

오늘의 불안은 오늘 나름대로 뒤엉킨다.

여태껏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기에 공존하는 쪽으로 택한 인간이다.

인간은 불안의 존재.

불안 자체를 넘어서 불안을 염려하는 마음까지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서 그 마음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타인의 불안을 염려한다면 이타적인 형태의 사랑에 가깝다.

자신의 불안을 염려하는 마음이라면 이기적인 사랑, 더 나아가 집착일 가능성이 높다.

타자로 향하는 마음의 근원은 불만이 아닌 불안이다.

내 안에서의 불안을 주체하지 못하고 외부로 나아가는 그 마음이 문제다.

내 불안만을 살피는가와 타인의 불안마저 돌보는가에서 내 마음의 진정성은 결을 달리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불안하지만 언어로 표현할 때에는 약간의 변주를 한다.

나 지금 불안해하지 않고

나 지금 피곤해라고 한다

마음에 가까운 관념의 상태는 증상을 쉽게 표현하기 어렵거나 난감해서 육체의 상태로 에둘러 말한다.

불안한 것은 피곤한 것일지도 모른다.

피곤한 것은 불안한 것이다.

마치 남자가 울고 싶을 때 화를 내듯이 말이다.

친구 중에서 화를 방귀 뀌듯이 자주 내는 녀석이 있는데

그에게 '울보'라고 부른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는 겉으로는 화를 내지만 안으로는 펑펑 울고 있는 듯 보여서다.

그래서 나이든 남자일수록 화내는 모습이 무섭기보다 측은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화를 내는 감정과 울고 싶은 마음의 방 사이에 벽이 없어지는 일은 남자들에게 흔하다.

감정의 원룸화!

마음의 단일화!

우리는 감정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우유부단해서

서운함과 속상함을 헤갈려하고

미안함과 섭섭함을 함부로 섞어버리고

이것저것 복합된 감정을 복합감기약 삼키듯 한데 혼합해 느끼다 보니 불만이 불안으로 가다가 마음의 리듬이 스텝이 꼬여 마침내 육체까지 기습해 피곤해진다.

게다가 그 불안을 염려하기까지 하는 마음은 오죽할까.

오늘 밤에는 페르난두 페소아에게 달려가 그 불안의 비밀을 들어보고 처방전을 받아와야겠다.


이리로 와서 내 곁에 앉아, 리디아, 강변에 조용히 그 물길을 바라보면서 깨닫자
인생의 흘러감을, 그리고 우리가 손깍지를 끼지 않았음을.
(우리 깍지를 끼자)
그리고 나서 생각하자, 어른스런 아이들로서, 인생이
흘러가고 멈추지 않음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멀고 먼 바다로 향하는 것을, 운명 가까이.
신들보다 더 멀리.
깍지를 풀자, 우리 지칠 필요는 없으니.
우리가 즐기든, 즐기지 않든, 우리는 강처럼 흘러간다.
고요히 흐를 줄 아는 편이 낫지
커다란 불안들 없이.
사랑들 없이, 증오들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열정들 없이도,
두 눈을 쉼없이 굴리게 하는 질투들 없이도,
조심함 없이도, 그게 있다 해도 강은 항상 흐를테고,
언제나 바다를 향해 갈테니.
평온하게 서로를 사랑하자, 우리가 원했다면
키스하고 포옹하고 어루만질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보다 나은 건 서로의 곁에 앉아서
강이 흐르는 걸 듣고, 또 바라보는 거란 걸,
우리 꽃을 따자, 너는 받아서 무르팍에
놓아둬. 향기가 그 순간을 감미롭게 하도록-
우리가 평온하게 아무것도 믿지는 않는 이 순간
타락하는 천진한 이교도들.
적어도, 내가 먼저 그림자가 된다면, 너는 나중에라도 날 기억하겠지
내 기억이 너를 타오르게 하거나 상처 주거나 감동시키는 일 없이,
왜냐하면 한 번도 깍지를 낀 적도, 키스를 한 적도 없고,
어린 아이들 이상은 아니었으니까.
네가 나보다 먼저 저 음울한 뱃사공에게 은화를 건네기 전에
너를 기억하며 내가 고통스러울 일은 없을 거야.
너는 내 기억에서 달콤할 거야 너를 이렇게 기억할 때면-강변에서,
무릎에 꽃을 둔 슬픈 이교도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 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